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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Aug 25. 2021

내 마음 속 재생 버튼

내 인생의 노래 한 곡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익숙한 멜로디인 듯하면서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집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거실로 들어서니 엄마가 소파에 앉아 종이 한 장을 두 손에 꼭 쥐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계셨다. 노래 부르는 엄마를 내가 본 적이 있던가.




“엄마! 웬일로 노래를 다 불러? 이건 무슨 노래야?”

“어? 딸 왔어? 엄마 노래 들었어? 아니, 학교에서 이 노래로 시험을 본다잖아. 그래서 엄마가 이 나이에 중국 노래를 다 연습한다. 되게 웃기지? 흐흐흐…” 엄마는 노래 연습을 하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주책맞다고 생각한 건지 수줍게 웃으시며 말했다.



엄마는 어려서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엄마 나이 70세가 되던 해였다. 그 당시 나는 남편과 주말 부부로 지내며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던 나에게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는 엄마의 말은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다. 하지만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는 엄마를 보니 아무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학도의 길을 선택한 엄마는 마포에 있는 주부학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이어서 고등학교에도 입학했다. 우리 집에서 매일 왕복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서울과 분당을 지하철로 오가셨다. 그런 엄마가 힘들까 봐 늘 걱정이었지만, 엄마는 학교 다니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 줄 아느냐면서 진심으로 즐거워하셨다. 가끔 언론에서 나오는 뒤늦게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의 시가 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지 알 것 같았다. 배움에 진심인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처럼.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서툴게 이, 얼, 싼, 쓰.. 짜이찌엔.. 하며 나에게도 생소한 중국말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젠 중국말도 배워?”

“야, 고등학교 오니까 제2외국어도 해야 한다더라. 일본말이랑 중국말 중에 선택하는 건데, 중국어 하기로 했지요”

70대 중반에 새로운 외국어라니.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나의 열정은 전부 엄마한테 물려받은 유전자임이 확실했다.



“여진아, 이리 와서 노래 좀 들어 봐. 왜 이리 부르기가 어렵냐? 그리고 들으면서 종이 아래에다 한글 말로 가사 좀 써줘.”


엄마의 핸드폰에서 여자 선생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부른 걸 녹음해 오신 거였다. 엄마가 부를 때는 무슨 노래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선생님이 부른 노래를 듣고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감미롭고 따뜻한 선율로 영화보다 더 기억에 남았던 그 노래는 바로 영화<첨밀밀>의 OST였다.



“이 노래 엄청 유명한 노래야. 엄마가 이거 부르면 진짜 멋지겠다.”


핸드폰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유심히 들으며 최대한 비슷한 한글 발음을 찾아 적었다. 몇 번을 들으니 나는 금세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지만, 엄마는 부를 때마다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날부터 매일 저녁 우리 집엔 노래 교실이 열렸다. 엄마와 난 식탁에 마주 앉아 수도 없이 손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노래를 불렀다. 서투른 노래에도 행복해 하는 엄마의 모습은 꼭 소녀 같았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나도 내내 마음이 흐뭇했다.



할머니의 노랫소리에 어느새 아이들도 옆에 와서 티엔미미~하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면 삼대가 가족 노래자랑이라도 나가는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한밤중에도 엄마의 방에서는 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 속에서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대충 준비하고 넘어가면 되지, 뭘 그렇게 열심이야 하겠지만 엄마를 고스란히 닮은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는 걸.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라는 걸.



그래서 엄마는 노래 시험을 잘 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엄마만 알고 있겠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다 말고 오랜만에 첨밀밀 노래를 틀었다. 소파에서 쉬고 있던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어? 서울 할머니 노래다!”

“이 노래는 갑자기 왜 틀었어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서울 할머니로 기억되는 노래. 나에게는 엄마와의 모든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그 노래를 설거지를 하면서 조용히 따라 불렀다. 소녀 같은 엄마가 부르던 노래를.


티엔미미 / 니 샤오 더 티엔 미미/ 하오 샹 후아 얼
카이 짜이 추엔 펑 리 / 카이 짜이 추엔 펑 리


더는 함께 부를 수 없지만, 엄마와 함께 불렀던 이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재생 중이다. 내 마음 속 재생 버튼은 언제든 누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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