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날이라고 아침밥을 배불리 먹고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있는 큰아이를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코로나 이후 학교 가는 횟수도 적어지고, 바깥 활동도 줄어서인지 살이 오른 아이 얼굴이 귀엽게 보였다.
“덩치만 커졌지, 완전 애기네, 애기.”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그 말이 싫지 않았는지 소파 위에서 아기 같은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웅크렸다. 아이의 순둥이 같은 모습에 또다시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끔은 너무 소소해서 특별히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지 못해 잔뜩 찡그린 아이 얼굴을 볼 때, 냉장고에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밑반찬을 쟁여놓았을 때, 유투브에서 노래방 반주를 찾아 아이들과 신나게 떼창으로 노래를 부를 때. 소박한 행복을 느낀다. 이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2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느덧 두 해가 지났다. 그날로 내 삶에 기쁨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평생 엄마 없는 아이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게 될 거라고 믿었다. 삼 남매 중 늦둥이 막내딸로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마흔이 되도록 나이만 먹었지 엄마 앞에서는 언제나 영락없는 막둥이였다. 엄마가 모든 어려운 일들은 나서서 해결해 줄 것 같아 엄마의 존재만으로 항상 든든했다. 엄마의 둥지가 너무 따뜻해 어른이 되어서도 품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바람과 의지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삶을 관통하는 순리는 많은 걸 내려놓게 했다. 그 시간 앞에서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이미 펼쳐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지에 대한 문제일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난 나에게 나를 맡기기로 했다. 방향을 정해놓고 따라 갈 수 없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통함을 한참 동안 세상에 그대로 뱉어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나의 아픔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소리쳐 울었다. 아이들 앞에서 체면이고 뭐고 엉엉 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없는 걸 모르고 시장에서 엄마를 찾다 미친 아이가 된 나를 만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나 이제 좀 괜찮은 거 같아…’ 내 안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나 이제 좀 괜찮아진 거 같은데… 네가 이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까? 나 이제는 그렇게 슬프지 않아.’
‘슬프지 않다니? 이건 무슨 소리야.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어?’
나에게 슬픔은 엄마를 기억하는 징표와도 같았다. 엄마를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나는 평생 아픔을 간직하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아프지 않다니.. 벌써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거야?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짧은 순간 떠오른 통제 불가능한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슬프지 않다는 감정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진짜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열어보기 두렵기도 했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어떤 마음인 걸까?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는 내가 분당에 사는 동안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들어오시곤 했다. 이렇게 반가운 얼굴인데 평생 슬픔으로 묻어 두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만이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함께 한 좋은 기억을 긍정으로 행복하게 안아보면 어떨까? 내 마음에 좀 더 솔직해져 보자고 용기내기로 했다. 엄마는 나에게 아픔도 슬픔도 아니다. 언제나 행복한 얼굴이고 기쁨인 사람이다.
지금은 엄마를 떠올리면 미소가 먼저 지어지고 행복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내 일상에도 다시 작은 행복들이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커다란 아픔을 털어낼 수 있었던 건 나의 감정을 오롯이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나와 함께 바닥 깊은 곳까지 내려가 같이 울고 소리치고 아파하며 슬픔을 퍼냈기에 감정의 찌끄러기가 남지 않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행복이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