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위로의 방법

함께 기억할게요.

by 아솔

“엄마.. 엄마...”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니, 멈췄던 눈물이 울컥울컥 밀려 올라와 통곡으로 이어졌다. 미영 언니가 조용히 다가와 미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언니… 우리 엄마 어디 갔어? 응? 나 이제 어떡해…”

“미정아, 엄마 아직 여기 계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뿐이야. 엄마한테 하고 싶은 얘기 마음속으로 하면 돼. 엄마 다 들을 수 있거든. 엄마도 처음 겪는 일이라 지금 너무 놀라셨을 거야. 영인이 되면 굉장히 지혜로워지신다니, 엄마가 놀라지 않고, 엄마의 갈 길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드려야 해.”



언니는 어디서 이런 말을 들은 걸까. 언니는 몇 해 전부터 요가 수련을 시작하고 최근에는 영성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사람이 확실히 편안해진 것 같았다. 미정은 언니가 가끔 SNS에 요가 공부를 하며 올린 글을 보면서 도인이 다 되어간다고 놀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언니의 말은 미정에게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단 말인가. 엄마가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데.




'엄마가 들을 수 있다고? 여기 함께 계신다고? 엄마. 지금 내 옆에 있는 거야? 내 말 들리는 거지? 엄마, 사랑해요. 고마워요. 엄마 딸로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요.' 미정은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순간이 오니 미정은 알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엄마한테 받은 전부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지금껏 미정을 지켜준 사람이 엄마였다는 걸. 그리고 지금은 슬픔에 무너질 때가 아니라, 마음이 괴롭더라도 감사와 사랑을 전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까지도. 엄마가 여기 머물러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이 미정에게 주어진 다시없을 작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미정은 자기가 죽어서 영혼이 된다면 슬퍼하고 있는 딸 옆에 와서 안아주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엄마 역시 자신을 안아주고 있을 게 분명했다. 미정을 감싼 공기가 엄마의 영혼이라 느끼며 눈을 감고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도 많이 놀라셨을 거야’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까? 혼자 가야 하는 길이 외롭진 않을까? 남은 가족들 걱정 때문에 슬퍼하고 있으면 어쩌지? 미정은 자신의 슬픔보다 새로운 여정에 들어선 엄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순간 미정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고, 앞으로 잘 살겠다는 약속이었다.


‘엄마,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나 진짜 잘 살게요. 지은, 지율이 잘 키우면서 진짜 잘 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건 엄마의 사랑 덕분이에요. 엄마 딸로 태어나서 정말 감사해요.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빈소가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조문을 온 사람은 뜻밖에도 미정이 다니는 회사의 인사팀 송 과장이었다. 회의 자리에서 몇 번 만나긴 했어도 평소 친분이라곤 없던 송 과장이 가장 먼저 여기에 올 줄이야. 평소 미정은 조문 갈 일이 있으면, 조문객이 많은 둘째 날 오후, 무리와 함께 가는 걸 선택했다. 어쩐지 조문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기도 하고, 슬픔으로 가득 찬 고인의 가족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늘 어려운 숙제였기 때문에, 둘째 날 오후가 가장 안전한 시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송 과장은 혼자였다. 빈소도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시간에 가장 먼저. 형식은 중요한 게 아니었구나.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와 건넨 그의 위로 속엔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조문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오후가 되자 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조문을 오기 시작했다. 미정의 가족들은 미리 역할을 나눈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오빠는 상주로 장례 절차에 따른 일들을 처리하러 다니며, 손님들 자리로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일을 담당했고, 올케언니는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들을 챙기며 일정들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움직였다. 미영 언니는 힘들어하는 아빠를 챙기면서 엄마의 지인들께 연락을 드리거나 빈소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챙기는 역할을 담당했다. 두 사위 역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잔심부름을 하느라 분주했다.



모두가 바쁜 와중에 막내 미정은 예외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빈소에 넋 놓고 앉아 있다 울컥하고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소리 내며 울었다. 한 마디로 슬픔 담당. 나이가 마흔이나 되지만 막내라는 타이틀은 어른처럼 애써 슬픔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은 그저 엄마를 잃은 아이일 뿐. 간혹 미정의 손님이 와서 찾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미정의 남편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정은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바빠 보이는 언니, 오빠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니도 오빠도 참 슬플 텐데… 슬퍼할 겨를도 없겠네…’ 삼 남매 중 유독 엄마와 애틋하게 지내던 막내라고 배려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가족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수영장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아.. 평소에 지병이 있으셨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니요. 어머니는 평소에 운동으로 관리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신 분이었어요”


많은 분이 조심스럽게 엄마의 사인을 물으셨다. 미정의 오빠는 덤덤히 상황을 설명하며 평소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지내셨다고 대답했다. 평소 건강하셨다는 말이 미정에게 왠지 서운하게 들렸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을지 몰라도, 혼자 아픈 걸 참으신 건 아니었을까. 자식들이 엄마를 너무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얼마 전 엄마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정아, 엄마 요즘 가슴이 좀 답답하네." 그 때는 서로가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엄마의 말이 미정의 귓가에 맴돌았다.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요.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셨다. 그분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엄마의 지난 삶이 그려졌다. 지난주 동창 모임이 미뤄져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다는 어릴 적 친구, 최근에 주부학교에서 연을 맺은 학급 친구들, 어려울 때 엄마가 돈을 빌려줘서 힘이 되었다는 분. 최근까지 엄마와 밥을 드셨다는 분들은 왜 또 이리 많은지. 생의 마지막 날 함께 남산을 걸었다는 동호회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밝았던 엄마의 모습을 전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자신감에 꽉 차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참 괜찮은 인생을 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미정은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을 상기시키는 것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고인을 함께 기억해 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먼저 꺼내 주는 것은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걸. 함께 기억할게요. 그대의 소중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