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엄마의 빈소를 차렸다.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장남인 오빠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빠 보였다. 미정은 생전 처음으로 오빠가 듬직하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지나는데 장례식장 안내 모니터에 미정의 가족 이름이 올라왔다.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린 고인이라는 두 글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자리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힘이 센 불청객이 찾아오고 나니 그 뒤로 크고 작은 불청객들이 지분이라도 있는 듯 미정의 현실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데 거부할 권리라고는 없다. 검은색 상복으로 갈아입은 미정은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빈소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느낌. 가만 생각해 보니 몇 해 전 직장 상사의 모친상 때 조문 왔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는 조문객이었는데, 지금은 상주로 와 있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런 날이 진짜 올 줄 몰랐다. 꿈에서라도 만날까 두려웠던 날. 아냐. 생각하지 마. 아직 상자의 뚜껑을 열고 싶지 않아. 이게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미정은 아직 현실을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주중에는 꼼짝없이 막내딸 집으로 출근을 해야 하니 엄마에겐 주말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토요일 마라톤 동호회에서 남산으로 가볍게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엄마는 즐거운 마음으로 회원들과 함께 이른 새벽 남산에 올랐다. 날이 추워서인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느낌이 들어 중간에 도로 내려와 쉬면서 일행을 기다렸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끓여 놓은 된장찌개로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장에 갔다. 벌써 20년 넘게 꾸준히 해 온 수영이다. 함께 한 세월만큼 수영은 엄마에게 특별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수영을 하면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며, 몸이 아프고 피곤한 날에도 수영장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수영장에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급성심근경색. 병원으로 바로 옮겨졌지만, 엄마는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수영장에서 생을 마감한 엄마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던 걸까.
오빠는 미정에게 영정 사진을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영정 사진이라. 모든 감각을 잃고 저 멀리 분리된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기분인데, 장례 과정의 하나하나는 미정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있다. 인생에서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는 일들. 하지만 이미 현재형으로 흘러가는 일들. 엄마의 카드지갑에서 최근에 여권을 갱신하느라 찍었던 증명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새 여권을 발급받으며 그 안에 담길 행복한 미래를 기대했었겠지. 하지만 사진 속의 엄마는 어쩐지 시무룩해 보였다. 환하게 웃는 다른 사진을 찾아야겠다.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미정은 자신의 핸드폰 속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넘기다 사진 한 장을 언니에게 보여줬다.
“언니, 이 사진은 어떨까? 엄마가 웃고 있잖아.”
2년 전, 엄마와 둘만의 데이트를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는 직장에 다니는 막내딸을 도와주기 위해 미정의 집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한 집에 있어도 아이들을 챙기고, 회사에 다니느라 서로 바쁘니 정작 모녀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미정은 늘 아쉬웠다. 우리도 숨 좀 돌려보자며, 휴가를 내고 엄마와 데이트를 했던 날. 데이트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맛있는 거 같이 먹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면 충분한 것. 미정이 선택한 곳은 집 근처에 새로 문을 연 호텔 뷔페였다. 대단히 화려한 호텔은 아니었지만 근사한 곳을 좋아하는 엄마가 맘에 들어할 만한 장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같이 신나서 들뜬 모습. 매일이 엄마에겐 고단한 일상이었을 텐데, 그 순간엔 일상으로 인한 지친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맞아.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지. 힘들 날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작은 기쁨에도 크게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 잠깐의 여유와 풍요로움이 느껴질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
딸랑딸랑~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얼른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더니 방금 막 따끈하게 쪄서 나온 대게를 한 접시 가득 담아왔다. 그리고 미정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방금 대게 나왔어. 떨어지기 전에 얼른 더 가져와’ 엄마의 텔레파시를 접수한 미정은 바로 대게 코너로 달려가 접시 가득 담아왔다. 멋진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와 딸이었더랬지.
아저씨 몇 분이 커다란 화환을 한쪽 어깨에 메고 빈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리저리 배열해 보더니, 만족스러운 자리를 찾았는지 검은 리본을 잘 보이게 펴놓고 인증용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중 하나에서 미정의 회사 이름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메시지가 몇 개 왔던 것 같다. 비어있는 제단에 과일이랑 음식들이 올려지기 시작했다. 명절 차례상에서만 보던 음식들. 빈소를 가득 채운 낯선 백단향 냄새. 그리고 단의 가운데 꽃장식 가득한 엄마의 영정 사진. 매일 보던 얼굴인데 왜 이리 낯설까. 미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 엄마는 여전히 미정을 보고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