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토요일 아침

슈뢰딩거의 고양이

by 아솔

드디어 주말. 미정은 일주일 중 토요일 아침이 제일 행복하다. 등원, 등교, 출근이라는 3종 세트가 없으니 애들하고 지지고 볶을 일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식탁에 아침 식사까지 차려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주말에도 엄마랑 살고 싶다. 참… 딸년이란. 미정은 아침이고 머고 다 건너뛰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다 느지막이 브런치나 먹으러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주중에는 일한다는 핑계로 밥하는 날이 거의 없으니, 최소한 주말 아침 한 끼라도 직접 밥을 차려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란 게 있었다. 귀찮더라도 몸을 일으켜야지.



씻은 쌀을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 후, 냉장고를 열어 반찬으로 뭘 할지 빠르게 살폈다. 평소에는 눈에 안 들어오던 청국장 하나가 보였다. 애들이나 남편은 청국장 냄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하지만, 왠지 오늘따라 두부를 잔뜩 넣은 청국장이 먹고 싶다. 좋아, 이걸로 당첨.



아이들은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불만 가득 섞인 목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남편도 영 만족스럽지 못한 눈치였지만, 어쨌거나 냄새 덕분에 주말 아침인데 깨우지 않고도 가족들 모두 일어났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진하게 끓여 낸 청국장을 한 국자 떠서 밥에 올려 쓱쓱 비벼 먹으니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미정은 만족스러웠다. 아침부터 큰일 하나 해낸 뿌듯함이 밀려왔다.




“엄마, 전화!”

밥을 먼저 먹고 일어나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밥을 먹던 아이들이 전화가 왔다며 미정을 불렀다. “아. 그래?” 젖은 손을 앞치마에 대충 닦고 거실 소파 위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미정의 올케였다. 올케언니? 올케언니가 나한테 전화를 한 적이 있던가? 근 십 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직접 통화할 일이란 건 없었다. 의논할 일이 있으면 나보다 더 편하게 지내는 미영언니와 얘기하면 될 일인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지?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누르기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불안한 예감에 온몸에 저항감이 들었다. 받기 전부터 힘이 쭉 빠지는 느낌.



“언니, 무슨 일이에요?”

“아, 고모… 서울에 좀 빨리 와야겠어요. 어머니가…. 좀 많이 아프세요.”

“네???? 언니… 알겠어요. 알겠어요.”



미정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엄마의 상태는 그래서 어떻다는 건지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아니. 단 한 마디도 더 알고 싶지 않았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그려 낼 현실을 도무지 만날 자신이 없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안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상자 안 고양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확인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난 것이 아니다.


bekah-russom-Y8QTiWuzYSs-unsplash.jpg Photo by Bekah Russom on Unsplash


토요일 오전 11시 반.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꽉꽉 막혔다. 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예상해 양재까지 돌아서 들어왔는데도 차는 꼼짝도 안 했다. 차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정은 절망적인 생각만 들었다. ‘엄마, 내가 있잖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지켜줄게. 엄마가 혹시 계속 병원에 누워있어야 한다면, 내가 옆에 꼭 붙어 있을게.”



그때 또다시 미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정의 오빠였다. 아. 받기 싫어. 난 못 받아… 울리는 전화가 너무 무서웠다. 받을 수가 없는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오빠… 으흐흐흑……”

“미정아, 미정아.. 엄마가 돌아가셨다. 으흐흑… 엄마가.. 돌아가셨어.”



이런 현실 같지도 않은 상황에 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앞뒤로 꽉 막힌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전해 들은 엄마의 죽음 소식이 지금 나한테 벌어진 일이라고? 아냐, 제발 이러지 마. 여긴 쓰러질 자리도 없어. 두 다리 움직이기도 불편한 자동차 앞 좌석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해. 몸이 묶여 꼼짝 할 수가 없어. 난 지금 미친년이 돼야 하는데 꽉 막힌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제발. 나를 가둔 세상은 꺼져버리고 나 좀 미치게 허락해 줘.




병원에 도착하고서야 모든 일이 현실임을 알게 됐다. 엄마의 임종 직후 병원에 도착해 곁을 지켰던 미정의 언니는 미정을 꼭 안아주면서 엄마는 자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고, 몸이 따뜻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엊그제까지 당연하던 일상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현재 진행형인 현실인데, 전혀 현실감 없는 이 느낌은 뭘까. 현실감을 잃어버린 건 미정뿐만이 아니다. 가족 모두 충격 속에서 말을 잊지 못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엄마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엄마는 아빠가 끓여놓은 된장찌개 냄새가 무척이나 구수하다며 환하게 웃었다고 했다. 어제저녁에는 미영언니와 오빠네를 불러 자장면도 사주셨다던데. 엊그제는 막내딸 집에 언니네 애들까지 모두 데리고 와서 잘 지내다 가셨는데. 그 일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맥락이라고는 하나 없는 지금의 현실이 튀어나온 걸까. 가슴 한가운데서 시작된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미정을 온전히 비춰주던 단 하나의 빛이 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