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흘 장의 이유.

삶은 뜻밖의 장소에 선물을 둔다.

by 아솔

보통은 삼일 장을 치르는데, 발인 일정이 안 맞아 하루가 더 늘어났다. 유래 없는 나흘 장. 미정의 가족은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남들처럼 제대로 챙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왜 마지막까지 이렇게 보내야 하는 걸까. 속상했지만 누구 하나 싫은 소리를 꺼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다른 의미 없는 감정에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나흘 장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건 아무래도 죽음을 연상시키는 숫자 때문이겠지만, 죽음 앞에서 숫자의 의미를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루가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형식은 남은 사람들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형식이라는 껍데기 속에 어떤 마음을 담느냐가 진짜이다.



가족들은 모여 앉아 엄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동안의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울기도 하고, 즐거웠던 기억을 함께 추억할 때는 웃을 수도 있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왠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 그것은 서로가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질이 공명 할 때 각 원소에 속한 전자는 어느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로 퍼져 존재하는 것처럼 미정의 아픔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닌 가족 공동체의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으니 아픔 속에서도 치유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미정의 가족들은 서로의 존재에 감사했다.




예정대로라면 발인을 했을 날이니, 빈소에 더는 찾아오는 조문객이 없어 고요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정 때문에 상주들은 보통 장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야 고인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다고 하던데 미정네의 경우 하루가 더 주어져 가족만의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히려 하루가 더 길어진 일정에 감사할 일.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미정에게 오빠가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곱게 접은 하얀 손수건에 쌓여 있는 것은 엄마의 반지였다. 아무 모양이라고는 없는 투박한 순금 한 돈 짜리 반지는 꼭 엄마 같았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소박하지만 순도 99.9% 진짜인 모습. 손가락 마디가 굵어져 빠질 것 같지 않아 엄마와 한 몸처럼 보였던 반지였는데. 세상과 작별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엄마의 반지가 지금 미정의 앞에 놓여있었다.


“이거 어머니 유품이다. 어제 전해 주셨어. 미영이랑 너랑 누굴 줄까 고민했는데, 네가 마지막까지 어머니와 함께 지낸 날이 많으니 미정이 네게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정은 반지가 마치 엄마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다. 엄마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미정의 네 번째 손가락으로 옮겨졌다. 마지막까지 엄마가 끼고 있던 반지이니, 그 속에서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반지를 꼭 감쌌다. 미정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헐겁게 돌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빈소로 들어오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는데, 오늘까지 빈소가 열려 있어 다행이네요. 더 일찍 와야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났어요.”

아주머니는 절을 올리고, 미정의 가족들에게 다가와 그날 아침 수영장에서 엄마를 만난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다.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분의 이야기.


“저도 아침에 남산에 다녀왔어요. 경자 언니도 만났고요. 언니가 올라가다가 힘들다고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서, 같이 내려가서 기다리다 집에 왔어요. 저는 씻으러 바로 수영장에 가고, 언니는 집으로 가고요.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나오는데 경자 언니가 샤워장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언니, 또 수영 온 거야? 아까 남산에서도 힘들다 그러더니, 오늘은 그냥 쉬지 뭘 또 왔어.”

“아냐. 이럴 때일수록 수영하는 게 좋지. 그래야 피로가 풀려”


“경자 언니가 이 말을 할 때 활짝 웃더라고요. 활짝 웃으면서 수영장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이 말을 가족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어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웃는 얼굴로 세상에 작별 인사를 보냈던 걸까? 주어진 삶을 다 살고, 이젠 웃으며 떠난다고.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니, 미정은 엄마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는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늘 열정적으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 없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은 아닐지. 미정은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더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엄마의 죽음을 떠올렸다. 품격 있는 죽음. 엄마의 죽음이 딱 그런 모습이다. 죽음까지도 엄마의 삶을 존중하고 보호해 준 것만 같았다. 죽음도 감사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후가 되어 빈소를 정리하고 가족은 집으로 향했다. 발인은 하루 남았지만 마지막 밤을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보통 장례를 치르는 동안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미정의 가족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더 생겼기에 가능했다. 집 앞에 도착해 미정은 엄마의 영정 사진을 꼭 끌어안고 차에서 내렸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순간 이기에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소중하고 떨렸다. 건물 현관문을 열고, 2층까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방금 지나온 길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 한번 지나가면 사라져 버리는 시간 앞에서 미정은 울고만 싶었다. 할수만 있다면 시간을 붙잡고 싶다. ‘엄마, 우리 집에 왔어요.’ 집에 도착한 가족은 엄마와의 마지막 밤을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함께 하던 날처럼 가족들은 저녁을 차리고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모두들 슬퍼도 웃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은지 자기들끼리 모여 떠드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익숙한 집 안 풍경, 그리고 왁자지껄 모여있는 가족의 모습까지. 엄마가 더 좋은 기억만을 가져갈 수 있기를.



어쩌면 4일간의 장례는 하늘에서 보낸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환한 웃음이었다는 얘기를 전해주려고, 그리고 엄마와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려고. 미정의 가족은 흘러가는 모든 시간에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발인 날 아침, 하늘에서 하얀 눈이 조용히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