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아멘과 지장보살

부디 저를 용서하소서...

by 아솔


어머니를 집 근처 안산 자락에 있는 대원사라는 절에 모시기로 했다. 대원사는 미정의 가족에게 익숙한 장소일 뿐 아니라, 미정의 어머니도 가끔씩 기도하러 다니시던 절이니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았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와본 대원사는 미정의 기억 속 장소와는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자주 놀러 다녔던 동네 뒷산의 조그만 절이었을 뿐인데, 이곳이 엄마의 납골당이 되다니… 이건 무슨 인연일까. 이 동네에 살게 되고, 이곳에 자주 놀러 왔던 지난날들이 오늘을 미리 준비하느라고 일어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데도 세상과 떨어져 있는 듯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래서인지 싸늘하고 낯선 납골당이 아닌, 어릴 적 추억의 장소로 소환되어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미정의 평온함은 여기까지. 사실 미정은 한 가지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바로 종교적인 문제. 미정은 가족 중 유일하게 기독교를 믿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다 보니, 나름 독실한 신자였던 미정의 종교적 신념과 부딪히는 순간이 종종 발생했다. 제사를 지내고 절을 올릴 때, 순간 주저했던 마음.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스스로가 미치도록 원망스러웠지만,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정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잠시 종교를 감추고, 아무도 미정의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엄마에게만 집중하기. 그런데 이제는 엄마를 절에 모시게 됐으니 잠깐 참아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미정에게 절이란 관광지 혹은 전통 문화재 그 이상, 이하의 것도 아닌데, 이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엄마의 죽음과 관련해 종교의 문제를 연결 짓지 않으려고 무단히 애썼는데, 삼우제를 치르던 날 기어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는 일.




미정의 가족은 삼우제를 치르기 위해 다시 절을 찾았다. 영정 사진과 과일 몇 가지를 간소하게 챙겨 엄마를 모신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불당 안은 천장까지 닿을 듯한 커다란 비로나자불상이 근엄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불상 수천 개가 빽빽하게 놓여있었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장소. 이런 곳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은 미정은 불상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고개를 홱 돌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넓은 나무 마루를 가로질러 불당 한쪽에 있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미정의 가족들은 납골당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제단에서 삼우제를 지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한 스님이 다가왔다.


“오늘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어머니 삼우제를 지내러 왔습니다. 따로 크게 준비한 건 없고, 조용히 가족들끼리 절만 올리려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다 인연이니, 제가 삼우제를 함께 지내드리지요.”

“스님께서 같이 해주신다면 저희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스님은 엄마의 영정 사진을 작은 나무 의자 같은 곳에 올려놓고, 시작하기 앞서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전하셨다.

“지금부터 지장보살님께 불공을 드릴 겁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으로 이분께 정성을 다하면 어머님이 좋은 길로 가실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어머니가 잘 가실 수 있게 온 정성을 다해서 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해요.”


이후 넓은 불당을 가득 채운 스님의 염불과 목탁소리에 미정은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마치 굿판에 앉아 있는 느낌. 도망칠 수도 없는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불당에서 목탁소리에 맞춰 지장보살에게 불공을 드리라고? 이런 미신을 믿으라고? 안돼. 이건 절대로… 난 할 수 없어' 저항감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꽉 찰 때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미정아, 지금 그게 중요해? 엄마가 좋은 길로 가실 수 있다잖아. 엄마를 생각하면 그까짓 게 뭐라고 못해.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엄마보다 종교가 더 소중하니?’ 미정에게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맞서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기어이 미정을 반씩 나눠서라도 차지하겠다는 기세로 압박해왔다.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찾아달라던 두 여인에게 보여준 솔로몬 왕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 아이를 반으로 나누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있는 걸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목탁 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행위에 마음을 내어야 한다. 엄마를 위해 지장보살에게 마음을 다 해라. 미정은 마귀가 있다면 분명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미정은 정말 울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부터 입으로 지장보살, 지장보살이라고 소리 내어 계속 외칠 겁니다. 지장보살께서 우리의 정성을 받으십니다. 그 정성이 다 어머니에게 갑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더 큰소리로 말하세요.”


삼우제가 절정으로 치닫게 되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지장보살을 계속 외치라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손을 모아 머리를 굽히며 지장보살을 연신 외쳤다. 미정은 이 순간이 마치 교회 부흥회에서 지장보살을 외치며 통성기도를 하는 것 같은 극도의 모순처럼 느껴지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나님을 버릴 수도 없었고, 사랑하는 엄마를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방인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엄마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뭐든 해야만 한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미정은 결국 아멘을 외쳤다. 비록 마음속의 외침이었지만, 그 외침이 너무 격렬해서 불당 전체에 퍼졌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믿는 신도 지금 순간 엄마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던 미정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미정은 아멘을 외침과 동시에 불당의 주인께 자신의 무례함에 용서를 구했다. 죄송하다고 도와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어떤 신이든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그리고 부디 엄마를 지켜주시길... 미정은 그 순간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다. 엄마를 위해 지장보살을 외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종교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의 못난 모습에 대해 화가 나고 절망감이 들었다. 미정은 아멘을 말하다 말고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슬픔에 북받쳐 우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옆에 있던 미정의 형부는 미정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날 저녁, 녹초가 되어 친정집으로 돌아온 미정은 샤워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니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머리에 샴푸를 묻히고 거품을 내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지장보살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지장보살의 향연.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절대 입 밖으로 낼 수 없던 금기어가 스스로 세상에 내뱉어지기 시작했다. 지장보살 감옥에서 해방되는 순간, 할 수 있는 거라곤 터진 입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미정은 더 강렬히 샴푸질을 하면서 동시에 연신 지장보살을 외쳤다. 삼우제 때 말하지 못해 괴로웠던 시간을 모두 토해낼 때까지. 미정의 수호천사가 있다면 미정에게 지장보살을 백 번 말해도 된다고, 그렇게 힘들게 담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알려주려던 건 아니었을까. 미정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벗겨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미정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