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은 엄마의 장례를 다 치르고도 차마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은 먼저 집으로 보내고 미정은 언니와 친정 집에 더 머물기로 했다. 늘 따뜻하고 온기가 넘쳤던 곳인데, 엄마가 없는 집은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낯선 곳이었다. 발인 전날 엄마의 영정 사진을 들고 함께 올 때와는 또 달랐다. 엄마가 없는 현실을 이제 진짜 대면해야 하는 시간.
미정의 가족은 둥지에 새들처럼 더 가까이 모여 서로의 온기로 감쌌다. 이것만이 지금의 혹독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에.
친정 집 오분 거리에 살고 있는 오빠는 아침 일찍 건너와서 아침을 준비했다. 엄마의 집 밥 레시피에 가장 익숙했던 오빠는 집에서 차려먹던 소박한 음식들을 만들어 냈다. 오빠가 음식을 만들면 언니는 상을 차려 미정의 가족은 안방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매 식사 때마다 엄마를 위한 작은 밥상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의 밥상은 미정의 담당. 따뜻한 김이 오르는 밥 한 그릇과, 반찬 한 두 가지를 올렸다. 엄마가 좋아하는 콩밥을 한 날이면, 콩을 많이 섞어 소복하게 퍼 담았고, 생선은 가장 실한 부분을 골라 접시에 담았다. 엄마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다고 정성을 다하고 있는 순간, 미정은 급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생전에 엄마를 위해 이런 정성으로 밥 한 끼를 차린 적이 있었던가. 가장 좋을 부위를 골라 먼저 내어드린 적이 있었을까. 애써 그런 기억을 찾아보려 해도 미정에겐 떠오르는 게 없었다. 미정은 항상 받는 쪽이었으니까. 받는 게 당연하다 여기며 그저 좋기만 하던 미정이니까. 자식들을 위한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줄 알았는데, 모성애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것들 전부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미정은 엄마가 되고서야 알았다. 엄마는 어떻게 자신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사랑을 쏟아부었던 걸까. 밥을 퍼 담으며 미정이 느꼈던 자책과 후회는 결국 다시 받은 건 사랑뿐이었다는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튕겨져 나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용수철 같은 사랑.
몇 년 만에 미정은 언니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 전엔 언니와 한 방을 쓰고,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많은 것을 함께 했는데, 결혼 후에는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에도 소홀해졌었다. 한번 맺어지면 평생 단단히 묶여있는 거라 생각했던 가족이라는 끈은,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느슨해졌고, 미정에게 언니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생겼듯이, 언니에게도 그러했다.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함께 자라는 시절에는 둘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었는데, 이제는 둘 사이에 우선순위가 앞선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은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이렇게 다시 언니와 나란히 누워있으니 둘 사이에 아무런 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좁은 방에 누워 서로가 이불을 더 차지하겠다고 양쪽에서 몸으로 돌돌 말아 당기며 힘겨루기를 했던 밤이며, 한 겨울 외벽을 뚫고 들어오는 추위에 몸을 딱 붙이고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잠을 자던 날들. 자다 가위에 눌려 온몸을 꼼짝 못 하고 무서움에 떨고 있으면 언니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미정을 깨워 달래주곤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역시 언니는 많이 무섭고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애썼다. 요가 공부를 해오면서 생각하게 된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언니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미정은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어 좁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엄마가 가야 할 여정을 따라 계속 가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언니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알고 싶은 게 많아졌다. 어려서부터 미정이 늘 두려워했던, 사실은 꽁꽁 숨기고 싶었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직면하고 싶어졌다. 친구들의 엄마보다 자신의 엄마의 나이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엄마가 일찍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서워서 울음이 났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왔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떨칠 수 없는 두려움에 미정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관련한 모든 잡념들을 철저히 외면하며 지내왔는데, 이제는 죽음이라는 게 대체 뭔지 너무나 알고 싶어졌다. 아니, 알고 싶은 것 이상으로 강렬하게 깨닫기를 원하는 마음은 새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 앞에서의 몸짓과도 같았다. 미정에게 금기시되었던 질문들이 하나 둘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죽음이 오는 그 순간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는 것인지. 사람은 왜 필연적으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존재인지. 대체 삶이란 뭔지.
미정은 알아차렸을까? 자신이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미정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되었다는 것을. 산이 갈라지는 것은 세상이 망하는 징조가 아니라 산이 무너지고 그 안에 새 길이 열린다는 의미라 말해주던 고전이 미정의 인생에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