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방 침대에 누워 방문을 열면 작은 거실을 가로질러 엄마의 주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결혼한 딸에게 친정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미정도 친정집에서 늦잠을 자며 맞이하는 아침을 제일 좋아했다. 이른 아침 비몽사몽으로 손을 뻗어 방문을 살짝 열어 두면, 칙칙칙칙 압력솥에서 김 빠지는 소리에 실려 오는 고소한 밥 냄새, 참기름을 넣어 오물조물 무친 나물 냄새가 방으로 흘러와 잠이 덜 깬 미정의 세포들을 슬며시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내 집이라는 편안함,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가 있다는 충족감으로 잠결에 느껴지는 밥 냄새에도 미정의 세포들은 기쁨의 세로토닌을 맘껏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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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뭐 이런 것만 모아 놓은 거야… 이걸로 뭐 해 먹겠다고?”
“왜 뭐가 있어?”
침대에 누워 있던 미정은 방문을 빼꼼 열고 보니 엄마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오빠가 서서 냉장고 속을 뒤적이고 있었다. ‘오빠라도 저기 서 있어 주니 고맙네…’
“그게 뭔데 그래?”
“미정아, 이리 와서 네가 좀 봐봐. 갈치인데, 어떻게 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부위만 있는 거야?”
미정의 오빠는 아침밥을 준비하려던 모양이었다. 반찬을 하려고 냉동실을 뒤지다 갈치 토막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을 찾아낸 것이다.
미정은 방에서 나와 식탁 앞에 앉았다. 엄마와 늘 대화를 나누던 자리. ‘여기 앉아서 식사 준비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게 정말 좋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슬픔이 치고 나오려는 욕망이 느껴졌지만 얼른 마음을 정리하고 오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문제의 플라스틱 통 뚜껑을 슬쩍 열어보았다. 냉동실에서 꺼내서인지 얼었던 통이 살짝 녹아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용기 안에 있는 것은 오빠의 말대로 갈치였다. 긴 몸통 중에 살이 가장 잘 들어찬 가운데 부위만 쏙 빠져있는 갈치 토막들. 갈치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어쩌면 갈치가 뼈째 먹는 생선인 줄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미정의 엄마가 모아둔 통 속에는 발라 먹을 게 없는 얄쌍한 꼬리 부위들이나, 내장이 반쯤 차지하는 부위들뿐이었다.
이번엔 슬픈 욕망을 참지 못했다. 플라스틱 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정의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울컥울컥 치고 올라오더니 식탁 위로 뚝뚝 떨어졌다. 미정은 그동안 엄마가 차려준 자신의 밥상에 올라왔던 크고 좋은 갈치들이 떠올랐다. 엄마는 집 근처 시장에서 갈치를 사 오면 가장 두툼하고 실한 부위는 따로 빼서 미정에게 가져다주고 나머지는 나중에 조림이나 해서 먹으려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의 냉장고에서 나온 갈치들이 볼품없는 건 당연했을지도. 미정이네 냉장고에는 지금도 여전히 두툼하고 보기 좋은 갈치 토막들이 쟁여져 있었으니 말이다. 제일 좋고 맛있는 부위가 언제나 막내딸 차지였던 것을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미정은 자신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곳곳에 빼곡하게 차 있는 엄마의 사랑에 목이 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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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거 실은 엄마가 제일 좋은 토막들은 나 먹으라고 가져다줘서 그런 거야. 우리 집 냉동실에는 실한 것들만 있거든.”
미정은 엄마의 사람을 독차지한 막내딸의 존재가 다시 드러난 순간이 슬프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눈물은 났지만, 엄마의 사랑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오빠는 눈물범벅인 미정의 마음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윤미정 엄마 아니랄까 봐... 제일 좋은 것만 골라 줬어. 엄마를 누가 말리겠냐. 아무튼 그럼 오늘 아침엔 이걸로 갈치 조림이나 하자”
아침 밥상엔 미정 오빠 표 갈치 조림이 올라왔다. 옥상 텃밭에서 키운 대파를 굵게 썰어 넣고, 듬성듬성하게 자른 무와 함께 자작하게 조려 내니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모양새였다. 양념이 배 보들보들 잘 익은 무는 볼품없던 갈치 조림을 더 풍성하게 했고 맛도 정말 좋았다. 가족들도 살이 없는 갈치로 만든 갈치 조림의 속사정을 듣고는 못 말리는 엄마를 추억하며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미정은 오래간만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