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 일 인분 Jan 20. 2017

너를 잊기 싫어서.

잊을까 두렵기에-

8월 24일에 태어나, 2x4는 8이라며, 생일을 억지로 외우게 시키던 친구가 있었다.
빼빼로 데이에 입양된 강아지, 빼로를 키우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 지하철로는 3정거장 차이, 봉고 탑승 시간으로는 5분 차이에 사는 이 친구와 나는 같은 화실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유일하게 순댓국을 먹으러 다니는 순댓국 메이트였다.
나와 친구는 다른 친구들은 못 먹는 순댓국을 먹으러 다니며 우린 우리가 조금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뜨거운 교육열로 유명한 동네에 살며 우린 종종 우리 동네를 욕했고, 우리의 엄마들이 동네의 엄마들과는 다르기를 바랐다. 우리도 동네의 친구들과 다르기를 바랐다. 이땐 우린 우리가 조금 깨어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친구의 엄마는 동네의 엄마들과는 달랐고, 친구도 동네의 친구들과는 달랐다. 나의 엄마는 애매했고 나도 애매했다.

한동안 나의 친구가 배우 임수정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세상에- 임수정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시험 날, 시험을 마치자마자 만난 친구는 정말 임수정을 닮았었다. (시험에 너무 집중하여 나의 눈이 이상해졌던 것일까) 그 이후에도 난 종종 친구에게 고등학교 입시 날의 ‘너’가 내가 본 ‘너’ 중에 가장 예뻤다고 말했다(=놀렸다). 난 그 날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다행히 둘 다 고등학교를 붙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둘 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실기반이 되었다. 분명 다행인 것은 우리의 실기반은 언제나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이 함께 했고, 우린 실기반 전체가 100등을 넘겨서 보충 수업을 받는 상황이 와도 즐거웠다. 재밌었다.

고등학교 3학년, 우린 함께 또 다시 입시를 하였고 순댓국을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은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학교 앞 매운 라면을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우린 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이상한 자부심과 함께 매운음식 메이트가 되었다.

다행히 우린 둘 다 대학에 붙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붙었다. 같이 학생증을 만들기 위해 입학 전 우리가 다니게 될 학교를 찾아갔고, 우린 함께 증명사진을 찍었다. 수시로 붙었던 너는 빨갛게 머리를 염색했었고, 정시로 붙은 나는 고등학교 때 머리 그대로였다.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날, 하필 비가 왔고, 우린 귀찮다며 그 대안으로 광장시장을 구경 갔다. 친구가 신기한 옷집들이 있다 길래 따라간 것 이였는데, 이제 막 20살이 된 우리는 광장시장 구제 상가 언니 오빠들이 무서웠고, 옷 쇼핑은 무슨, 미로 찾기 하듯 출구를 찾아 내려와 마약김밥을 먹었다. 그만하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1학년 때, 우린 둘 다 연애를 했고, 서로의 연애가 재밌었다. 비교적 안정된 연애를 하는 ‘나’와 흥미진진한 연애를 하는 ‘너’는 서로의 연애 스타일을 비교/분석하며 꽤나 진지하게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지금의 내가 들었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이야기들을. 귀여운 우리였다.

친구의 집 앞에는 카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역 안에 카페 하나가 생겼다. 우린 자주 그 곳에서 만났다. 추운 날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추레하게 하고 나온 날에는 활동 범위를 줄이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나는 네가 떠난 후, 다른 이에게 그 카페를 추천했다. 그 사람도 그 카페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난 네가 떠난 후, 다시 그 카페를 가보지 못했다. 아직 있을까.
 
술을 마시고 친구의 집으로 해장을 하러 가면, 친구는 라면을 끓이고 라면죽을 해줬다. 친구가 해주는 라면죽은 신세계였다. 친구의 정리 안 된 방도 신세계였다. 정리가 안 된 방을 전혀 부끄러워하진 않았지만 라면죽 맛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먹고 싶다, 라면죽.

누군가 우리에게 제일 친한 사이냐고 물었는데, 우린 아니라고 답했다. 함께 지내온 시간동안 항상 서로에게는 더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린 그 누군가의 질문에 말을 더했다. 하지만 항상 옆에 있는 사이라고, 뒤 돌면 서로가 있다고. 정말 우린 항상 옆에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2cm 겨우 차이나는 키를 지닌 우리는, 누군가 키가 작다고 놀리면 함께 발끈하였지만 친구는 높은 굽을 신고 학교를 뛰어다녔고, 나는 땅바닥에 달라붙는 플랫을 벗어나지 못했다. 숏컷과 염색으로 자유로이 머리 스타일을 바꾸던 친구와는 달리 나는 24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잘라 보았다. 춤 동아리, 연극 동아리 등 활발히 대학생활을 했던 친구와는 달리 나는 동아리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더 화려해보이고, 더 자유로워 보이고, 더 재밌어 보이는 친구가 부러워, 조금은 질투 섞인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의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애인과 같은 색으로 염색을 했다고 자랑하던 친구는, 4년 전 발렌타인 데이에 화려하고 자유롭고 재밌는 인생을 살던 그녀의 모습과 닮은 마지막을 맞이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발레타인 데이 저녁을 잊지 못한다. 새터를 따라 다녀와 초저녁부터 잠든 나를 깨우던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엄마의 이야기를 믿지 못한 채 핸드폰을 켜니 떠있는 한 친구의 부재중 전화, 혹시 몰라 찾아본 뉴스를 통해 보게 된 친구의 기사.

제일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항상 옆에 있던 친구는 잠시간 제일 친했던 친구보다도 친구의 마지막 길에는 쓸모가 있더라. 나는 우리가 함께 스쳤던 사람들과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다.

이후, 근 1년간 샤워를 할 때마다 친구를 떠올렸고, 어차피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과, 친구를 대신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갈아 머릿속을 맴돌았다. 친구가 언제나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 부끄러운 짓도 못 하며 지냈다. 친구의 마지막 장소인 제주도는 가장 가기 두려운 곳이었다.

왠지 모르는 우울함이 닥칠 때마다 그 이유를 친구의 부재 때문이라며 친구를 탓하다, 친구가 마치 나의 핑계거리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 가장 힘든 시기를 묻는 질문에 친구의 사고를 이야기 하다, 친구가 나의 인생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된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나만은 너를 안 잊겠다며- 외치던 나 역시도 4년이 지나니 친구는 아주 가끔 떠오르는 존재가 되었다. 제주도는 그 후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고, 매일 같이 친구가 생각나던 4년 전, 안 잊혀질까 걱정했던 것이 민망할 만큼, 나의 친구는 아주 드문드문 꿈에 나타나고, 아주  드문드문 샤워 상념을 함께한다.

4년 전, 친구에게 자주 보러오겠다고 약속했던 나는, 친구를 보러 먼 길을 갔음에도 친구에게 집중도 안 되고, 오히려 집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변명을 대며, 2년간 친구를 향하는 발길을 끊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귀찮다는 이유도 분명히 함께하고 있었다.

-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 눈이 펑펑 오던 그 날, 2년여 만에 친구를 보러 갔다. 언젠가 혼자 이 곳을 오는 날도 있겠지- 생각했었고, 그 날이 온 것이다. 이상하리 만큼 슬펐던, 친구를 보러가는 그 날의 오전을 이제 생각해보면 2년 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나를 향해 친구가 서운함을 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젠 너를 보고 오는 길에 맛있는 음식점에서 한 끼 먹고 오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며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정말 버스 환승을 기다리며 따듯한 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슬퍼야 한다는 공간의 압박 속에서 나온 눈물이 아닌, 친구가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솟았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친구에게 집중하여 이 얘기 저 얘기 쉴 새 없이 떠들다 돌아올 수 있었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죽었다’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할 만큼, 친구의 부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지만, 친구에 대하여 이정도의 추억들을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다. 친구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추억상자가 열릴 때면, 서둘러 상자 위에 무거운 것들 올려두곤 하였는데 이젠 조금씩 열어서 하나씩 펼쳐 볼 용기가 생긴 것에도 감사하다.  

함께 먹은 순댓국이 몇 그릇인지, 함께 먹으러 간 매운 음식이 몇 종류인지, 함께한 연애 상담이 몇 번인지, 함께 역 안에 있는 카페를 간 것이 몇 차례인지, 함께 라면죽을 먹은 것이 몇 번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린 여전히 항상 옆에 있는 친구이고, 난 이제야 은정이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월요일 오전 지하철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