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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 일 인분 Dec 31. 2016

어느 월요일 오전 지하철에서.

언젠가의 나를 위해-

나는 지금 이 글을 써야겠다.

언젠가 세상을 향해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희망은 없다며 주저앉을 나를 위해 이 글을 남겨야하는 것이다.


지금 난 지하철에서 눈물을 참고 있다. 오늘은 월요일, 현재 시각은 09시 05분. 그렇다. 월요일 출근길의 복잡한 지하철이다. 그 안에 나는 오늘도 몸을 실었고, 그 속에서 나는 이 글을 쓰며 걷고 있다.


요즘 가장 싫은 말 중 하나가 청년의 열정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청년의 연령에 속해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열정은 없다. 미안하지만 난 열정없는 젊은이로 살겠다.


하지만 우린 허구한 날, 열정있는 청년이 이 시대의 인재라는 어처구니 없는 프레임을 쓰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헌데, 결국 그 프레임이 일을 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전세대보다 못 살거라며 '불경기'를 말하던 언론, '요즘 애들은 저금도 못하면서 비싼 커피를 사먹는다'던 넥타이 맨 누군가의 손가락질, 내가 당당히 노동하여 번 돈으로 옷 한 벌 사며 느꼈던 나의 소비욕에 대한 자책이 물밀듯이 나를 덥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린 왜 oo자금을 포기하고 여행을 선택하며 자신을 '미래 대책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걱정하였던가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 기저에는 또 다른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때문에 월요일 출근길 나의 얼굴을 붉그락붉그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코에서 뜨거운 김을 뿜으며 '이 칸 안에 타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분노를 느낄까-'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마침 지하철 문이 열렸고,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신다. 언뜻 보아도 연세가 꽤 많아 보이시는 할머님께 자리를 비키고자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는 순간 할머님께서 나의 무릎을 본인의 무릎으로 밀며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녀의 한 마디, "요즘은 젊은 이들이 더 힘들잖아, 난 다리 운동 해야해!" 그렇게 발을 한 번 굴려보이더니 웃으신다. 결국 그녀는 일어서고 나는 앉은 채 지하철은 출발했다.


그렇게 마음 불편하게 앉아있는데, 한 장애인이 젤리를 팔며 지하철내부를 돌아다닌다. 얼떨결에 눈을 마주쳤고 장애인은 내게 왔지만 난 불편해하며 거절하였다. 이후 장애인은 다른 쪽 좌석을 한바퀴 돈 다음 다시 우리쪽으로 왔다. 할머님은 그 다시 되돌아오는 장애인을 붙잡고 내가 들고있던 그녀의 가방에서 천원짜리 한 장 꺼내어 젤리를 산다. 본인은 젤리 안먹는다며 내게 건넨 그녀의 젤리를 나는 부끄러워 받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지하철 내부 어디선가 기침 소리가 울린다. 생각보다 오래- 쎄게 기침을 내뱉는 그 여자의 위치를 파악하던 할머님은 또다시 내 품에 있는 가방에 손을 넣으시더니 그 속에서 주섬주섬 비닐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봉투에서 사탕을 하나 빼내어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등을 쓸어내려준다. 기침 소리는 곧 멈췄다.


여기까지 보고, 나는 나의 가방을 뒤적였다. 지금 이 지하철에서 베풀고만 떠나는 할머님께 무엇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평소에 뭐라도 좀 들고 다닐걸, 하는 후회와 함께 가방안을 살피니 요깃거리로 싸온 쿠키가 몇 개 보인다. 이거라도 드려야지 싶어 타이밍을 살폈다. 아니, 나는 나의 용기를 살폈다.

나란 사람은 조건없는 베품이 어색하다는 걸 이렇게 느낀다.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할머님은 내리실 역에 다다르게 되었고, 나는 내리기 위해 문 앞으로 이동하는 할머님을 보며 놓칠까 황급히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쿠키를 내밀었다.

"너무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꼭"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용기를 살피다 내겐 조급한 시간만이 주어졌다. 결국 이 두 마디 내뱉었고, 동시에 눈물이 차올랐다. 갑자기 다가온 나에게 할머님께서는 고맙다고 웃어보이시곤 그렇게 떠나셨다.


그리고 난 지금 지하철을 빙빙 돌아다니며 눈물을 말리고 있다.


입 안에 욕을 잔뜩 담고 세상을 향해 쌍심지를 켜고 있던 내게 할머님은, 아니 이 세상은, 그래도 이 곳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이렇게 알려준다.


조금 전까지 입안 가득 담겨있던 씨발-이라는 단어로 이 세상을 내 멋대로 결론내기엔 오늘 만난 그 할머님께 미안해졌다.




분명 훗날 나는 또다시 욕으로 가득찬 하루를 만날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세상에 분노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의 아침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의 내가 '그럼에도-' 내가 희망을 잃지 않기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오늘을 기록/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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