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 일 인분 Dec 14. 2016

적당한 처세술, 괜찮음의 상자

몇 달 전, 누군가 내게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어려운 질문이라 말하며 잠시간의 시간을 번 후, 난 처세술에 강한 사람인 거 같다고 답했다.


처세술 [處世術]

사람들과 사귀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수단.


그랬다. 그때의 나는 처세술에 강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맺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당한 때에 치고 빠지며 적당한 호감과 미움을 받는, 그런 처세술에 강한 사람이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적당한 처세술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로 부터 며칠 후, 오래간 나를 지켜봐온 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며칠은 내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어쩌면 저 처세술에 강한 사람이라는 나의 답변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는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며 보낸 날들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났을 때에는 처세술에 강한 사람-이라는 그 대답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께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들었다며, 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맞는 거 같다고, 그 때의 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상황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내게 한 마디를 남겼다.


"네가 내 생각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라 다행이야, 하지만 어쩌면 그건 학습된 방어기재일 수 있단다. 나도 그랬었어. 학습된 모습은 언젠가 버티지 못할 때가 오더라고. 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니까. 잘 생각해봐."


그랬다. 내가 말한 처세술이란 말 뒷 편에는, 나를 지킬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고, 그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했고, 그 정도의 때를 계산해야만 했고, 또 그 정도의 감정을 주고 받아야 했음이, 결국 '적당하지 못함에 대한 불안'이 어색하게 숨어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나의 처세술에 강하다는 대답에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처세술이라는 이름표를 단, 나의 학습된 적당함은 언제 그 끝을 보일 것인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 한계를 마주하기 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앞의 대화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 힘들텐데, 항상 괜찮다고만 말하는 친구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걱정되었지만 이런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괜찮다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저 계속 저 괜찮다는 말이 진심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항상 홀로 힘듦을 견디고 그 후에서야 내게 털어놓곤 하였던 친구 아니던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하는 우리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 역시도 힘든 시기에,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꼭 나의 짐을 함께 짊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 입술을 때기 전까지 깨나 오랜시간 고민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종종 각자의 몫의 시련은 각자가 끌어안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어른스러운 것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 어쩌면 이 친구도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내게 "괜찮다" 하는 것이 않을까. 생각이 번져 오지랍되었고, 결국 친구와 헤어지기 직전 한 마디 얹는다.


"네가 내 생각보다 더 단단해서 다행이야, 안 괜찮을 때는 언제든 말해. 난 얼마 전 내가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학습된 거라는 것을 알았거든. 네가 너의 힘듦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 혹여나 학습된 것일까봐. 난 네가 네 자신을 '괜찮음'이라는 상자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그랬거든, 우린 조금 다른 케이스지만 말야. 갈게."


친구는 돌아서는 나를 불러 자기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며 로또를 사러가자고 말한다. 멋진 오지랍을 부리고 떠나려는데 로또라니! 찌릿 민망한 눈빛을 날렸지만 바로 따라나섰다.

"난 자동으로 할거야! 오늘 운 안좋아.. 기계가 나보다 나을 듯."


우린 로또를  빌미로 대화의 시간을 얻었다. 로또는 결국 사지 못했지만, 난 그 로또 사러가는 길에서 친구의 그간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다 더 편하게, 보다 더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친구의 솔직한 털어놓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내가 그래도 오늘은 이 친구에게 작은 시원함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감히 바래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이 친구와도 처세술이 강하여 이렇게 밀접한 사이가 되었는가 생각한다. 처세술을 말하기엔 너무도 어릴 때 우린 만났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적어도 우리 사이엔 이 관계 속에는 학습된 무언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아! 이 역시도 학습된 우정인가! 의문이 떠오르는 걸 보니 이제 그만 생각할 때가 되었나 보다.


수많은 학습된 모습에 강요받으며, 학습된 모습으로 관계 맺으며, 그렇게 적당한듯 적당하지 않게 살아가지만, 가끔은 학습되지 않은 본래의 내 모습을 내보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치 않은가, 아 이렇게 너무 벗어나려는 것 마저도 학습된 것이 아닐까- 안되겠다. 이건 끝없는 질문이다. 끝없는 질문은 내가 적당할 때 끝내야 한다.  끝-











작가의 이전글 괜찮은지 궁금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