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생각이라도 계속 꺼내고 던지고 얻어맞아야 한다
첫 글은 중요하다. 뭐든 처음은 중요하다.
어떤 성취를 이룬 사람이 과거 자신의 첫 작업을 꺼내어 본다면, 그것은 보통 이불킥을 하고 싶은 퀄리티의 조악한 것이기가 쉽다. 하지만 처음에 하는 무엇인가는 그것이 처음이라는 로맨틱한 이유에서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개발되고 발전된 결과물이 수정하고 바꾸고 재창조 한 원형이라는 실질적인 이유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나의 첫 글은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남들 앞에 내놓는 이야기는 얼마나 완성된 버전이어야 할까?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소고기를 먹는 것은 행복하게 대우받지 못한 동물을 괴롭히는 행위이며 자연에도 좋지 못하다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치자. 이 사람은 그 다큐멘터리가 재미있어 그의 시선을 잡아끌어서든 거기서 접한 어떤 정보가 그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과 연결점이 있어서든 아무튼 크게 감명을 받고 이제부터 자기는 채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생각을 동창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말했다. 친구 중 한 명이 반론을 제기한다.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 걸? SNS에도 적었다. 응원한다는 댓글이 주를 이루지만 시니컬한 답글도 달린다. 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자기가 잘못된 정보를 접한 측면도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내가 뭔가를 제대로 알기 전에는 입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 지식을 갖추고, 일정 수준 이상의 생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게 맞는 걸까? 완성된 견해가 아니면 함부로 입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 이것이 내가 하려는 이야기이다. 일단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만약 그렇다라면 이론적으로 우리는 영원히 입을 다물고 사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 대해서 내 의견을 낸다고 생각해 보자. (뭐 우리 의견을 반영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냥 예만 들어보자) 나는 경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그래도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정도는 되어야 그런 주제에 대해서 의견이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경제학과 학부생이 이런 주제에 대해서 대해서 이야기해 봐야 그 깊이는 별 것 없기가 쉽다. 그럼 석사 박사 과정에 있는 이들이 잘 아느냐 하면 그들도 학부생보다야 낫겠지만 결국 제한적이고, 그렇다면 국책 경제 연구 기관의 연구원 정도는 되어야 이런 부분의 견해를 표현할 자격이 생기려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비 재무적, 외교적, 정치적 요소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 책상머리에 머물러 있는 견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고 올라가자면 이 나라에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몇 안될 것이다. 그럼 이 주제는 진정 그들 외에는 다룰 수 없는 것일까?
대학 교수도 세계적 석학 앞에서 자신의 연구 성과가 부끄러울 수 있고, 세계적 석학도 아인슈타인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게 부끄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전에는 모두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상한 장면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을 20대 후반의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되면서, 내 견해가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끊임없이 의견을 이야기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숙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간 버전의 생각과 의견을 드러내어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분야도 궁극의 진리 혹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추는 수준의 전문성에는 도달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데다가, 그 도달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 의견 공유와 실패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그에 대한 논의와 사고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까지도 포함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당위성도 크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내 의견을 수정할만한 합리적인 외부적인 정보나 의견을 접수한다면, 그리고 내가 거기에 스스로 설득이 된다면 (자기 자신은 알 것이다. 겉으로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의견을 바꾸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견해가 항구적인 내 인생의 최종 결론이라거나 깊은 고민 끝에 내놓은 종국의 의견이 아닌, 계속 검증하고 깎아나갈 수 있는 완성되기 전의 조각 과정으로서의 돌덩어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연한 사고를 갖고 더욱 합리적인 의견과 판단으로 옮겨가며 전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런 존재가 아니다. 나의 견해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그 말이 일리가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철벽을 치고 절대 설득되지 않으려고 한다. 말싸움을 하다가, 아 그렇군요 당신의 말이 일리가 있네요 나는 그럼 의견을 당신에게 동의하는 쪽으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보다는 머릿속으로는 아 이 지점에서 나의 논리가 무너졌구나 하고 인지하면서도 그동안 주장해 온 자신을 부정할 수 없어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지지 않으려고 한다. 궤변도 사용해 보고, 존중받고 싶다는 논리의 게임에서는 쓸 수 없는 표현을 끌어오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그런 동물이다. 내가 내놓은 의견이 반대를 마주하지 않는 그림이 좋고, 그러려면 내가 편한 사람들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과만 대화하려고 하거나 견해가 상당 부분 완성된 다음에 내놓으려고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지 않은 패키지이다. 생각의 형성 과정에는 중간 버전이 있는데, 그 버전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어야 대화가 진전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각의 십자로 위에 자신을 놓을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최신 버전이 되는 것이다. 구석으로 가면 고립되고 제한되고 발전이 느리다.
만약 자신이 그렇게 의견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면 상당한 완성도를 갖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혹은 너무 개인적인 견해라서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꺼리가 아닌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집스러운 헛소리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런 유연성을 발휘할 자신이 있다면, 과감하게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 비판, 비난 같은 리스크가 따른다. 완성도 낮은 의견을 내놓을 때에는 얻어맞고, 고칠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보상 또한 따른다. 우리의 생각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서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여 표현하는 과정 자체에서 자기 자신의 의견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남녀 간의 차이, 갈등과 그 이유 등의 주제에 지난 10여 년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대학 시절 때부터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도 했었고,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동들에 호기심이 많은데, 가장 일상적으로 보는 인구의 절반과 또 다른 절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라는 지점이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을 했다. 가끔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한 언급을 조심하라고 조언해 준다. 친구가 실수할까 봐 걱정해 주는 마음은 너무 고맙다. 대화를 나눌 때, 나와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내가 설득당할만한 논거와 주장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전향적이고 빠르게 내 오류를 인정하고 의견을 바꾸는지에 대해서 놀란다. 자기 의견을 툭툭 이야기하며 사는 이미지라 그런지,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견해를 바꾸는 그런 일이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정 반대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은 내 궁극의 고집이 아니고, 중간 버전이며, 나는 합리성 앞에서 줏대가 없는 사람이며, 데이터나 납득할만한 근거를 가진 견해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그것은 나를 180도 아니 540도라도 바꿀 수 있다.
자기 의견이 100점이 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최근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는 대화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골든리트리버가 귀여운지 포메가 귀여운지 같은 개인적인 영역의 선호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표현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아무리 보아도 아쉬움이 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을 정정하는 유연성을 가진 어른을 많이 보며 자라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 속에 이런 에너지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살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 더 잘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이 엉터리라고 생각하시면, 합리적으로 짚어주시면 즉각 견해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 좋아. 다음 글부터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지껄이기 위한 밑밥을 다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