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와 함께 코미디 계열 콘텐츠 창작을 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책으로 쓰고 있다. 2월 즈음 서점에 나올 것 같다. 그 과정에서 AI 시대에 인간이 하는 활동들의 의미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윤곽을 그려보게 되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사건 이후로 (AI 관련 글이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진부한 것 같다. 미래에 AI들은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접근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바둑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인간들끼리 하는 (이런 표현을 쓰게 되었다는 상황 자체가 참 흥미롭다) 한 바둑 대회에서는 참가자 중 누군가가 장치를 사용해 AI의 훈수를 받는 방식으로 승리를 한 것이 발각되어 부정선수로 실격되는 일도 일어났다.
인간끼리는 신체를 사용하는 스포츠 종목에서 명백한 하강기 연령에 접어든 나이 많은 선수가 19살의 신예에게 패배한다든지 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번 누군가에게 패배하더라도 절치부심하여 더욱 훈련하고 노력하여 다음번 승부를 기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교 1등이 2등에게 따라 잡히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1등을 탈환하고자 생각하고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어떤 분야에서 따라 잡히는 순간은, 보통 그 분야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영원히 이기지 못하기 시작한 순간이 된다. 더 이상 뒤집히지 않는다. 그래서 SF 영화등에서도 인간이 로봇과의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모든 전원을 차단한다든지 하는 특단책을 사용할 뿐 다시 잘 열심히 싸워서 이기자는 접근 자체는 잘 나오지 않는다. 어떤 승부에서 내가 누구에게 졌지만 다음에는 이겨보고자 더 노력하고 이런 그림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이 이 승부의 잔혹한 측면이다. AI에게 따라 잡히면 그 분야는 그걸로 끝이다.
그럼 그 끝(모든 것의 끝은 아니고 일단 그 분야에서의 끝)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들이 있는가?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을 우리의 역할로서 해내고 있다가 하나씩 차근차근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대량으로 AI에게 추월당할 것이고, 그중 정량적인 분야는 1번 상황이 되고, 정성적인 분야는 2의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다.
1. 정량적으로 추월당한 분야의 미래 : AI와의 승부는 포기하고 인간들끼리 하는 승부로서의 의미를 강조
한마디로 AI는 제외시킨 상태에서의 승부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일단 인간은 나보다 (일단 최소한 정량적인 측면에서만은) 완벽하게 나은 존재를 소유한 이상한 포지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지배관계에만 문제가 없다면 승부라는 것 자체가 완벽하게 유흥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사람 사이에 이겨봤자 일의 영역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100미터 달리기 등 운동 종목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대회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가? 당연히 있지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그럼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가장 빠른 인간이 되는 경쟁에서는 여성이 승리하기 어렵다. 그래도 여성의 100미터 달리기 대회는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비슷한 질문으로서, 아마추어들의 경쟁은 어떤가? 중학교 이상의 선수 등록을 했었던 테니스 선수가 참가하지 못하는 규정이 있는 동호인들의 경쟁, 혹은 3년, 5년 이하의 구력으로 참가자격을 제한한 대회에서의 경쟁은 인간계 궁극의 지점을 향한 경쟁이 아니므로 의미가 없는 것일까? 장애인들의 경기는 어떤가? 마찬가지이다. 그럼 인간의 달리기가 로봇이 달리는 속도에 미치지 못하면 인간의 100미터 달리기도 의미가 없어지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럼 바둑은 어떤가. 인공지능보다 역량에서 밀리는 단계가 달리기 기계, 계산하는 기계보다 그 시기가 더 늦게 다가왔을 뿐, 결국 밀린 후에도 인간끼리의 경쟁은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측면은 있을 것이다. 그림, 문학 등 정량적인 평가 요소가 적은 분야와는 다르게 승패가 딱 떨어지는, 기록이 딱 떨어지는 종목에서는 최정상이 아니면 흥행성이 떨어진다. 남자가 100미터 경기가 여자 100미터 경기보다 좀 더 많은 주목을 받는 것처럼, 여자 피겨스케이팅이 남자 피겨스케이팅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처럼, 어떤 분야에서 궁극의 (성별, 장애별, 경력별, 등등) 최고에 터치다운하는 존재를 가리는 경쟁은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최고의 ㅇㅇㅇ라는 단어를 어떤 어떤 중에서 라는 추가적 수식어 없이 (사실은 인간 중에서 라는 수식어가 있는 것이겠지만, 인간중에서라는 수식어는 사용된 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쓸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인간이 더 이상 AI에게 바둑을 이길 수 없다면 이런 측면의 최고의 자리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받기 어려운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래 이런이런 제한과 참가자격을 설정한 상태에서는 그 사람이 1등이지” 와 “그 사람이 (혹은 존재가) 지구에서 최고지” 와는 흥행성에서 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존재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인간들 중에서는” 같은...
2. 정성적 분야의 미래 : 인간에 의한 작업이라는 의미부여로서 AI와의 치열한 승부
3. 추월당하는 과정, 그리고 시장에서의 AI와의 승부 : 현실적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확률이 가장 높은 혼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