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아침 등교길이었다.
그 날도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내가 타야 할 시내버스가 보였다.
‘저 버스를 놓치면 백퍼센트 지각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 겨우 버스를 잡았다.
떠나기 직전이었던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순간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기사 아저씨뿐만 아니라 버스에 있는 승객이 모두 흑백으로 보인다.
‘이상하다. 왜 이렇지?’
버스를 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 늘 언제나와 다름없는 총천연색 세상이다.
그런데 다시 버스를 타려고 앞을 보니 그 앞은 온통 흑백이다.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내 눈이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눈만 꿈뻑거리고 있을 때 버스기사 아저씨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학생, 안 탈거야?”
“아. 네. 저 다음 차 탈게요. 뭘 두고 온거 같아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머리가 멍했다.
버스는 그대로 출발했고 나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힘 없이 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 때 저 멀리서 쾅 하는 소리, 급정거하는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런 것들이 연달아서 들렸다. 순간 소름이 돋고 등에는 식은 땀 한줄기가 흘렀다.
아침 출근길 만원버스와 급발진 자동차의 충돌, 거기다 뒤 따라 오던 트럭까지 연이어 충돌한 후 5중 추돌사고가 발생했고 버스 탑승객은 기사를 포함 대부분이 사망한 대형사고였다.
그 때 알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죽음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그 때문에 버스에 탄 모두가 흑백으로 보였다는 것을.
가끔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그저 너무나 큰 나쁜 기운 때문에 벌어진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누구나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리고 애써 그 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그 기억은 몇 년이 지나자 거의 흐릿해졌고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몇 년 후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반이 된 나는 말쑥한 정장을 빼 입고 입사면접을 보러가는 중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대기업. 여기 합격하기만 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오매불망 자식의 취업만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이 대기업에 다니는 딸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실까. 합격도 하기 전에 김칫국을 마시며 부푼 마음을 안고 면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본사 건물이 보인다. 아침이지만 강렬한 햇빛 탓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부터 서둘러 오느라 긴장을 했던 탓인지 입이 바짝바짝 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 기다릴 수도 있으니 생수나 한 병 사가지고 갈까.’
지하철역 근처 상가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 기분 나쁜 느낌. 기억에서 잊혀진 줄 알았던 그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편의점 모습이나 점원은 평소와 같이 생기있게 보이는데 손님들이 이상하다. 우루루 한꺼번에 들어온 손님들이 모두 흑백으로 보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경직된 표정으로 서둘러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불길한 느낌을 어서 떨쳐버리고 싶다.
면접이 예정된 장소를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간신히 찾아갔다.
“왔어? 왜 이렇게 안오나 했네.”
같이 면접을 보게된 친구가 나를 반기며 이야기했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대기실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렴풋이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걸까?’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면접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게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