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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면 '뭐'가 되죠?

노벨상의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있네.

by 트윈플레임

어릴 때는 맛있는 걸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별로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일 맛있을 때, 제일 좋을 때 먹어야지 괜히 묵혀두면 결국 제일 상태 좋을 때를 내가 못 즐기는 게 되니까.

그래서 이제는 뭐든 제일 좋은 것, 제일 맛있는 것을 보면 기다리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나'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한 사람이며,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급하게 은행을 들렀는데 가방 안에서 신분증을 꺼내다가 저 바닥 밑에 처박힌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휴, 이게 뭐야.

이미 몇 주는 된 빵이다. 찌그러지다 못해 봉지 채로 짓이겨져 있다.

누가 맛있는 걸 주길래 아껴뒀다 집에 계신 엄마를 가져다 드린다고 생각했던 게 그만 그대로 잊혔다.


아꼈더니 X 돼버렸네.




며칠 전 도서관 글쓰기 동아리 모임 중에 울린 핸드폰.

슬쩍 보니 속보 기사 링크다.

제목을 보니 '노벨상' 이란다.

뭔가 다시 읽어보니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뭐지, 오보인가.

이렇게 갑자기?


물론 다행히도 오보가 아니었고 그날 밤 나는 뭉클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것은 몇 년 전 사두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책.

도대체 어디에 있지?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중고로 판 것도 같고.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찾아냈다! 2016년에 출간된 책을.

묵혀둘 마음으로 묵혀둔 것은 아니었고 왠지 문학상 수상작은 어려울 것 같았고 거기다가 서평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책장 속에서 잠을 자던 책은 드디어 노벨상 호명과 함께 내 눈앞에 펼쳐졌다.


어쩌면 좋은 것을 아껴두는 마음은 이런 걸까.

아마도 2016년에 읽었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지금에 딱 맞는 책이야.

노벨상의 감동과 40대의 연륜으로 읽어내는 책.


아끼고 아꼈다 읽는 책의 맛이란.

한여름 무더위 중에 만난 단비와 같고, 소풍 가서 찾은 보물쪽지와 같은, 책장 속의 묵혀둔 새 책은 사자마자 바로 읽은 책에 비해 더 여운이 길게 남고 만족스러운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때로는 아껴두는 것이 보물을 만드는 일일 때도 있음을 이렇게 배운다.

삶은 늘 하나만 정답이 아닌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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