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묻따 대기업에 취업하다.
대기업 : 대기업은 자본금이나 종업원 수의 규모가 큰 기업으로, 보통 대규모의 생산 자본과 영업 조직을 갖추고 있어서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기업을 일컫는다.
대기업의 사전상 의미는 이렇지만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에게 느껴지는 의미는 그저 '내가 이름을 들어본 회사'였다. 물론 어딜 가면 초봉이 얼마라더라, 보너스는 어디가 잘 나온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들을 들어본 적은 있어서 그저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겠거니 하는 정도가 막연한 대기업의 이미지였다.
학교 취업센터에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잘 기억해 뒀다가 각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접수했다. 사실 그래봐야 이미 써놓은 자기소개서를 붙여 넣기 할 뿐이었다. 그래도 회사 이름이 나중에 헷갈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지원한 회사 이름은 수첩에 따로 기록을 해뒀다. 나중에 졸업할 때 보니 지원한 회사가 50군데 정도였다. 그 당시에도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라고 했으니 나름 선방한 거라고 생각했다.
첫 시작은 지원서 작성으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대기업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무슨 아이큐 테스트도 아닌 것이 고등학교 수학, 과학 시험도 아닌 것이 영 이상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강남의 무슨 고등학교 하나를 통째로 빌린 걸 보니 지원자가 많기는 엄청 많은 듯했다. 어떤 회사는 자기네 회사 강당에 사람들을 불러놓고 시험을 치르게도 했다.
시중에는 이런 시험만을 대비한 문제집도 있었다. 이 때도 가성비를 따지던 나는 취업카페에서 시험대비 문제집을 공짜로 준다는 사람을 만나 문제집을 받았고, 그 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문제집을 다시 주는 대물림을 했다. 이 때는 참 이런 아름다운 문화도 있었구나.
지원을 50군데 했지만 면접까지 다 가지는 못했고, 그래도 꽤 여러 군데를 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대기업은 면접비를 준다는 것. 그래서 면접을 보고 온 날은 남자친구와 고기를 사 먹는 날이었다. 나름 면접비를 얼마 주느냐에 따라 이 회사가 좋구나를 판단하던 아주 단순했던 시절의 나였다.
그러다 여러 회사의 요모 저모에 대해 듣게 되었는데 대기업은 입사를 하게 되면 신입사원 연수라는 것을 간단다. 대부분 그 회사의 연수원에 모아두고 똑같은 옷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며 학생의 때를 벗기고 사회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곳이라고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온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월급까지 주는 이 신입사원 연수가 거의 호캉스에 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신입사원 연수기간이 가장 긴 회사에 취직을 하겠노라고.
대부분의 연수기간은 1개월 남짓이었는데 한 군데 회사가 눈길을 끌었다. 연수 기간만 장장 3개월. 그동안 급여는 90% 지급. 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다! 입사 전 스키캠프 초대가 있었기에 스키복 풀세트 제공, 그리고 연수 막바지에 미니 행군 같은 것도 하기에 등산화와 등산가방까지 지급을 해줬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쓰던 나는 그저 이 신입사원 연수에 눈이 멀어 회사에 입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대기업에는 엄청나게 많은 계열사가 있다는 것을.
그저 회사는 다 같은 회사인 줄 알았지. 이름도 비슷하던데.
그래서 처음 시작한 내 사회생활은 전공과 매우 무관한 건설회사였다.
아무렴 어떠냐. 3개월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많이 주는데.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고, 내가 처음 직장인이 된 날은 2004년 1월 1일이었다.
나는 몰랐다. 그 아무 생각 없이 내린 나의 결정이 그 뒤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때까지도 내게는 신입사원 연수는 스카우트 체험 같은 느낌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