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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방해 속에서 피어난 신축 판타지

by 트윈플레임

11월에 접어드니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진다.

쌀쌀한 아침 공기에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다.

그래도 얼른 차에 타면 출근길은 춥지 않을 거란 생각에 후다닥 현관문을 나선다.

저기쯤 주차를 했었지 하는 마음으로 눈을 들어 주차해 둔 차 쪽을 쳐다보고는 생각지 못한 광경에 눈이 번쩍 뜨인다. 주차해 둔 차 바로 뒤로 재활용품 수거뭉치를 가득 실은 집채만 한 화물차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게 아닌가.

‘고물을 실었으면 빨리 나갈 것이지 가뜩이나 좁은 아파트 주차장 한가운데 떡하니 서있을 건 뭐람.’

출근하는 데 문제가 없을지 걱정이 밀려왔지만 애써 입술꼬리를 위로 올리며 화물차 운전석으로 종종걸음 쳐 갔다.

이상하게도 화물차 운전석은 비어있고 저 멀리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쓰는 비질소리만 들려온다. 초조한 마음으로 화물차 근처에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비질을 멈추고 경비원 아저씨가 한걸음에 달려온다.

“차 빼시려고요?”

“네, 그런데 운전사분이 안 계시네요?”

“허허, 이 사람이 어딜 갔지. 날씨가 갑자기 추워서 그런가 지금 차가 시동이 안 걸려서요.”


‘뭐라구?? 시동이 안 걸린다고? 그럼 난 어떻게 출근하라고??’

나는 황당함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저 멀리서 화물차 운전사가 걸어오고 수리를 할 사람인지 견인을 할 사람인지는 40분 후에나 도착을 한단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하나 포기를 하려던 찰나 다른 경비원 아저씨까지 합세하여 화물차를 우선 뒤쪽으로 밀어낸다. 다행히 차 하나 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추운 날씨에 따뜻한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상의 방해를 뚫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 그동안 감춰왔던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아… 나도 새 아파트 살면 얼마나 좋아. 지하주차장에서 우아하게 차를 빼면 오늘 같은 일도 없을 텐데.’

몇 주전 다녀온 친구집이 떠올랐다.

넓고 넓은 그리고 밝기도 한 지하주차장을 통해 아파트로 들어가니 깔끔한 엘리베이터가 손님을 맞이하고 역시나 깨끗한 복도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쾌적한 경로였다. 지상주차장에 그것도 이중주차가 예사인 내가 사는 곳과는 이미 시작부터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그 친구의 집도 완전 최근에 지은 신축은 아니었고, 그보다 더 전에 방문했던 다른 아파트는 정말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좋았다. 집 내부에 온갖 수납시설이 기본으로 있는가 하면 무료제공되는 음료가 있는 카페,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조식과 석식이 제공되는 식당 그리고 손님용 게스트하우스까지 있는 것을 보다 보니 나는 어디 원시시대 초가집에서 살다 온 느낌이었다.


‘아, 이사 가고 싶다.’

당장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늘 품고 있던 마음의 소리다.

지금 사는 곳 근처에서 이동하기엔 터무니없는 가격에 엄두도 낼 수 없고 그렇다고 멀리 가기엔 아이들 학교와 우리 부부의 출퇴근에 불편이 생기니 그 또한 쉽게 계획하기 힘들다. 결국 돌고 돌아 결론은 지금 이대로 만족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결론밖엔.

이런 무한루프의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오지만 그래도 이 겨울에 따뜻하게 내 몸 쉴 수 있고 쫓겨날 걱정 없는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생각하며 서둘러 현실불가능한 꿈을 머리밖으로 몰아낸다.


추운 겨울아침 어느 날 재활용 수거차를 보며 생겨난 새 아파트에 대한 로망을 겨우겨우 불식시키며 오늘도 출근하기 미션을 완료한다.

‘기왕 이렇게 출근한 거 그저 최대한 오래오래 하다가 그만둬야지. 혹시 알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느 날 새 아파트에 갈 수 있는 날도 오게 될지.’

생각만 해도 씰룩씰룩 입술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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