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면 이런 애 꼭 있다.
여기저기 동네방네 모르는 친구 없는 애.
낄 데 안 낄 데는 가리지만 낄 수 있는 데는 꼭 끼는 애.
뭐든 잘 먹고 특별히 가리는 것 없는 애.
오는 친구 안 막고 가는 친구 안 잡는 애.
내가 그런 애였다.
그냥 두루두루 다 잘 지내고 특별히 친한 애도 특별히 안 친한 애도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와서는 그나마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생기긴 했지만 역시나 아주 깊은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뭔가를 같이 하는 친구관계였다.
늘 친구들에게 진심이었고 특별히 거리를 두려고 한 적은 없다. 뭔가를 숨기는 성격도 아니고 싫은 것이 많은 성격도 아니라 늘 좋은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어제 만난 사이 같은 친구들이다.
그런 나에게 요즘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물론 나는 친구를 금방 잘 사귀는 편이긴 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가까워지지만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기는 힘든 성격인지 내 마음을 표현하거나 힘든 얘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이 친구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뭐든 다 이야기하게 된다.
만난 시간도 불과 몇 개월 남짓이다.
그런데 이런 친밀감은 어디에서 생긴 걸까.
같은 글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마냥 비슷해서도 아닌 것 같고 살아온 환경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각자가 쓴 글을 열심히 읽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일반적인 친구들과 글쓰기 친구들과는 시간의 농도가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만날 때만 생각하고 함께하는 친구들과 달리 내면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친구, 그 이야기를 틈틈이 생각해 주는 친구. 그래서 같이 있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고 연결되어 있는 친구.
이런 것들이 우리의 농도를 일반적인 다른 만남과 다르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 새 친구를 사귀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특히 아는 사람이야 생길 수 있지만 마음을 나누거나 서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나의 이런 생각이 여지없이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처음 만난 사이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웃어 넘기지 않고 차분히 들어주는 사이.
오랜 시간만이 그런 관계를 선사하지는 않는구나. 관계에는 그마다 다른 농도가 있구나. 우리는 조금은 다른 묽기로 서로를 만나고 있구나.
이 우정이 이대로 유지될지 변할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이런 진한 사이가 무척 반갑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깊어지는 만큼 그 관계가 더욱 진해지길 바란다.
한 사람이 읽는 책을 안다는 건 나에게 있어 우정을 쌓아 가는 데 필요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빠르게 가까워지는 일이다.
- 사생활들, 김설 저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