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응급실

준비된 날은 없다.

by 열음

어제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내린 결론은 내일 아침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받아오자는 것이다. 지금 당장 통증이 심하지 않더라도 언제 더 나빠질지 모른다는 게 오빠의 주장이었고 동의했다. 계속 괜찮다는(괜찮다는 게 아니라 괜찮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엄마의 말을 이제 들어줄 수가 없어서 내일 아침 8시가 되면 응급실로 출발하기로 했다.


어제 밤에는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무슨죄로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일주일, 이주일 전의 할머니 모습이 사진에도 남아있는데 저렇게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는지.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병원에 왜 안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지. 지난 병원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는지가 이해가 되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침 7시 30분쯤 덜커덩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봤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할 시간이구나. 8시쯤 "수진아."엄마의 말이 들려 바로 나가보니, 할머니가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밥도 안 먹겠다는 할머니 때문에 엄마는 사색이 되었고 응급실에 가자는 거였다.


너무 피곤하다고 했던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빨리 일어나서 가야겠다고 해서 우리는 아마...5분 정도만에 준비를 다 한 것 같다. 휠체어, 휠체어에 깔 패드, 추우니까 담요, 혹시 모르니 기저귀, 내복, 화장지까지 다 챙겨 차에 몸을 실었다. 응급실에 가는 10분에 10시간처럼 느껴지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행이도 중증 환자가 없었고 응급실 환자가 별로 없어 대기할 필요가 없었다.


할머니의 증상을 설명했다. 소변을 보긴 하는데, 스스로 화장실에 가는 게 어려워 기저귀를 찼어요. 일주일 전쯤 통증이 있었는데 점점 심해져서 못 참을 것 같아요. 1/8에 대전 충남대병원 외래가 잡혀있는데 그전까지 진통제가 필요해요. 아랫배가 아프고, 방광에 큰 혹이 있어요. 이미 림프절 전이가 다 되었어요. 아파서 밥을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했어요. 진통제가 필요해요.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대요.


응급실에서 진통제 처방을 받으니 비용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과 바로 입원할 수 없다는 것을 동의하면 질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전 충남대병원에서의 진료기록은 세종 충남대병원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미 그 전에 암 중증환자로 등록해놓아 처방은 쉽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진통제 수액을 이야기했지만 그 수액도 맞지 않겠다는 할머니. 결국 멕스노펜정 진통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왔다.


아무것도 목으로 넘기고 싶지 않은듯 밥도 약도 거부했지만 억지로 먹였다. 사골곰탕 국물에 밥을 말아 아주 조금씩, 그것도 국물이 대부분 10숟가락정도 삼켰을까. 아프다고 하니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눕혔다. 1시간쯤 후 들여다봤는데, 평안해진 얼굴이었다. 진통제가 드나보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하다.


남편 말이 맞다. 우리는 지금 한 박자씩 늦고 있다. 응급실에 이전에 갔어도 됐다. 밥을 잘 먹을 때 미리 먹였으면 계속 꾸준히 드셨을까. 힘들기 전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을까.


이제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 엄마는 호스피스 입원을 마음 먹은 것 같다. 호스피스에 여자 병동 자리가 비어 있다고 해서 울며 전화를 했던 엄마이지만, 할머니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걸 보고 호스피스 입원 절차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지독한 외로움을 대신해 주고 싶다. 그렇게 외로워하는데 자주 만날껄. 할머니가 수십번 같은 이야기를 해도 새로운 것처럼 들어줄껄. 후회가 산더미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


할머니의 고집을 꺾고 호스피스 입원을 통해 통증을 줄여주는 것. 외롭지 않게 매일 방문하는 것. 할머니 덕분에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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