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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옥 Mar 21. 2017

세상은 나의 비극과 상관없이 조용히 흘러간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이상한 영화이다.

영화 속 세상은 분명히 비극인데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여느날과 같이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고 새들은 떼를 지어 날아가고 하늘은 푸르르다.

이 평온하기만 한 세상에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가는, 하지만 어딘가 이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리'가 있다.


*스포는 없습니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사는 '리'는 어느 날 형 '조'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이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 한다.


모든 비극의 시작이였던 맨체스터에서

그는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맨체스터로 돌아온 '리'.

비극은 한순간에 아주 조용히 일어났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잊혀진 듯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와 그날의 일들을 기억했고 그 또한 하나둘 그날의 비극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진 '리'는 조카 '패트릭'과 함께 보스턴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패트릭은 떠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패트릭과의 갈등, 새로운 일자리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되는 가슴 아픈 과거.

리는 맨체스터를 떠나 반지하의 단칸방에서 죽은 듯 살았었다. 그곳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건 오직 손에 닿지않을 만큼 높이 위치한 조그마한 창이 전부였다. 그렇게 리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둬두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리가 갑작스레 조카의 후견인으로 지목되면서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떤 표정도 없이 감정을 꾹꾹 누르며 지내다가도, 때때로 창문을 부수고 술집 행인에게 괜한 주먹을 휘두르며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해버리는 리. 그 모습을 통해 그가 느끼는 고통들을 짐작해볼 뿐이다.



조카 패트릭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씩씩하게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무덤덤하게 일상을 이어가지만, 순간순간 영안실에 얼어 있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려버리곤 한다.

어떻게 상처를 마주해야하는 지 몰라 때때로 몰려오는 감정들에 속수무책으로 정지되어 있는 리와 패트릭.

그런 패트릭과 리가 닮아있다고 느낄 때쯤 그들도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My heart was broken.

But I know yours was broken, too.


드넓은 바다와 파도를 따라 살랑이며 움직이는 요트들.

영화의 초반부, 멋진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던 맨체스터의 얼굴들이, 후반부에도 여전히 잔인하리만큼 고요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세상은 나의 비극과 상관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흘러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

전 부인 '랜디'(미셸 윌리엄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랜디. 그렇게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였을 거라, 이제 지나간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할 거라 생각했던 랜디는 말한다.


가슴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당신의 가슴도 무너졌다는 걸 안다고


불행 중 다행인걸까. 비정한 세상속에도 내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

랜디와 리. 서로를 옆에 두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자꾸만 그들을 괴롭히지만 그들은 그 슬픈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비극을 '함부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생 지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 어쩌면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없음을, 그들은 알고 있다.


리는 맨체스터로 돌아와 잊고 싶은 자신의 상처를 다시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 주는 패트릭과 랜디를 만나 함께 울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상처는 상처일 뿐이라고.

깨져 버린 그릇을 다시 붙여 놓는다고 해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선명히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살아갈 뿐이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그래서 리에게 그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음에 숙연해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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