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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옥 Aug 16. 2017

삶의 기행 끝에 남는 것

김승옥 - 무진기행(1964)

무진(霧津)은 어떤 곳일까. 수평선이 펼쳐지는 바다다운 바다가 있는 것도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안개가 명산물이라고 말하는 그곳. 무진의 안개. 희미해져 버린 기억인지 눈 뜨면 사라져버리는 언젠가 꾸웠던 생생한 꿈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인지 혹은 내가 아픔을 준 사람인지. 그 모든 것들이 엉키고 설켜 서서히 형체를 잃어버 채, 무진의 안개로 남아 있다. 쓸쓸한 안개가 감도는 몽환적인 곳. 그의 기행문을 보며 떠올린 무진의 첫 느낌은 이러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 Impression, Sunrise
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무진기행 中




관념 속 어느 아늑한 장소로서의 무진

 주인공 '나'는 서울에서 한적이 그리울 때 무진을 떠올린다. 그건 그에게 서울을 벗어난 자연과 시골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대표적인 곳이 그가 나고 자란 무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념 속 어느 아늑한 장소로서 떠올리는 무진이라면, 나도 무진으로 가본적이 있다. 나에게 무진은 '경주'였는데 어떤 연고도 없는 경주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고향에 온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건 쓸쓸함이 주는 안도감이였는데 마치 내게 '여기서는 마음껏 외로워도 돼'하는 이상한 위로를 건네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경주를 찾아갔다. 찾아갈 수 없으면 홀로 경주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도 무진기행을 읽으며 경주를 떠올린다.

 

하지만 내게는 경주에 남겨놓은 '과거'가 없다는 점에서 무진과 같은 도시로 여기기는 어렵다. 주인공에게 무진은 단순히 이상적인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강물이 흐르고 방죽이 바닷가까지 뻗어 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은 무진을 떠올리다 보면, 그 끝에 덩그러니 서있는 젊은 시절 '나'의 어둡던 과거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실패의 공간으로서의 무진

'나'는 현재 서울에서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서 큰 제약회사의 전무 자리 취임을 앞두고 휴식차 고향인 무진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무진은 과거 모두가 전쟁터로 몰려갈 때 '나'는 어머니의 강권에 의해 홀로 골방으로 도피하거나, 실직과 실연 등으로 인해 고통받던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좀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 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이렇듯 휴식을 위해 떠난 무진여행을 단순히 낭만적 회귀로 바라보기에는 무진에는 젊은 시절의 절망과 방황의 안개들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서울과 무진의 경계에서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데, 그 모습이 과거의 '나'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그런 그녀를 그는 무진에 두고왔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무진. 무진. 무진...


무진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이다. 무진. 그런 도시를 조용히 되뇌다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다. 가슴 깊숙히 묻어둔 이름을, 사무치게 보고 싶은 이의 이름을 남몰래 끄집어보는 기분이다. 그건 아마 무진에 '하인숙'이라는 여인을 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무진에서의 '나' 자신이거나.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외면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 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 '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사라졌다. 그의 무진기행 끝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무진으로, 다시 무진에서 서울로. 사실 그곳이 무진이 되었든 경주가 되었든 물리적 이동의 의미로서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며 다시 무엇을 향해 돌아가는 지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선택의 끝에 느끼는 감정이 '부끄러움'이 될 것인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될 것인지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의 기행문을 써내려 가야할 것이다.




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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