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학생이 12년 동안 한국 교육과정을 밟게 된다면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절대 싫다고 대답합니다.
무려 12년 동안 수십 명의 학생들과 내내 같은 교실에서
비슷한 자세와 태도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그중에서도 중, 고등학교 6년은
강의식 수업방식과 진도 나가기도 급급한 방대한 양의 수업 내용들이
주를 이루어 수업시간이 꽤나 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는 학창 시절 음악 전공을 준비하고 있어서 더 수업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살아보니 공부가 다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한국 교육은 '공부가 다야'라고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은 아직 생활 습관이나 학교 공동체 생활 규칙을 배우지 못해서
다듬어지지 못한 가장 날것의 모습들을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특히 초등에서는 기어 다니는 학생, 딴짓하는 학생,
산만하고 충동적인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눈에 띄는 모습은 많이 사라지죠.
왜 그럴까요? 그 아이들이 모두 교육받고 변해서 그럴까요?
저는 다 그렇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이 정도면 안 혼나겠지'정도의 수준으로
자신의 특징을 숨기는 기술만 익혔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익히기까지 그 학생은 얼마나 많이 혼나고 비난받았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어딜 가나 '이 정도는 앉아 집중해서 공부해야지'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선천적인 주의력 결핍의 문제,
기질적으로 자극추구, 위험 회피가 낮은 유형인 사람,
가정이나 대인관계와 같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심리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
학업에 대한 반복된 실패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 진로 고민,
애착 유형의 문제, 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심리적 문제
공부 전략의 공백, 열악한 가정환경 등...
밝고 신나던 그때 그 초등학생이
학교 교실에서 팔 바꾸어가며 잠자는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학교 교육은 무얼 한 걸까요?
정답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학교 교육이 학생들을 품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적인 요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서바이벌에 특화된 나라 같다고 생각해요.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룬 나라로,
주변 강대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나라 자체의 자원도 부족하여
늘 투쟁하며 열심히 살아왔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칼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에 자리 잡혀
경쟁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에서는' 유명 대학교 진학'이나 '대기업 취업'이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히죠.
그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 '공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신 분들이 '교사'가 되셨고요)
그러나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소수입니다.
둘째, 마음건강 교육의 공백입니다.
나라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놓친 몇 가지 불균형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마음건강 교육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입니다.
(제 주변만 해도 매년 1~2명의 자살 소식이 귀에 들려옵니다.)
급속도의 국가적 성장과 개인의 마음건강은 반비례 관계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급속도로 국가가 성장하려면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개인의 취향과 기질은 고려하지 않고 집단적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국가가 희망하는 인재상을 기르기 위해 가르칩니다.
그렇기에 수업시간에 꼼지락대고 있는 심리적 특성이 있는 학생은 문제아가 되기 쉽습니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는 학생들도 선생님도, 심지어 학부모님도 찾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저는 상담교사로 ADHD 학생인데 약을 먹지 못한다면
수업시간에 잠깐이라도 높은 흥분도를 낮추도록
스트레스볼이나 피젯큐브, 피젯스피너 등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그걸 만지고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 부러워하고,
수업시간을 해치기 때문에 대부분 뺏으시더라고요.
마음건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깊어져서 개인의 특성을 존중받게 된다면
언젠가는 학교 교실 내에서 학생들이 개인별 특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받는 것에 대해
교사도 학생들도 이를 존중하고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생길 거라고 기대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 개인별로 필요한 교육방식을 적용하고, 이를 다른 학생들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선생님이 교육한다고 합니다.)
셋째, 철학의 공백에 들어선 만연한 물질주의와 성취주의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 것인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이
학생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다각도적인 관점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철학.
철학의 공백에 들어선 물질주의와 성취주의가
학생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은 쉽게
'건물주가 되고 싶어요, 비트코인 사서 떡상해야지,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서 사는 것이 제일 좋지 않나요?'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도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알려주지 않고
생각해 볼 기회도 없이 바쁘게 수업 진도 나가기 급급한 학교.
삶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해 버린 학생들.
아이들보다 조금 더 살아보니,
20대를 훌쩍 넘겨도 생각은 계속 바뀐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였고
'삶이 이렇다는 걸 진작 배웠으면
학생 때 그만큼 괴로워하며 허송세월 보내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에 읽은 책 '시크하다(조승연 작가)'에서
'프랑스 교육'에 대해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죽음과 성에 대해 마음껏 토론하는 학생들,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의사로 돈을 벌어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어른들,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어른으로 키우는 프랑스 교육
우리나라는 왜 이런 교육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다른 여타 선진국처럼
자원이 많은 나라도 아니고, 문화나 역사로 관광업을 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어서
단번에 위의 3가지 어려움이 해결될 거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죠.
그래서 뛰어난 인재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칭송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지향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위의 3가지 원인으로부터 벗어나는 교육을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