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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30. 2021

다시 쓰는 마음 24

닭다리

문득 요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일주일에 6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아주 간헐적으로 드는 생각들 중에 하나가 어제는 “닭다리”에 관한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에 나는 늘 닭다리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 치킨이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아주 어린 시절, 그때 우리 집은 진짜 단칸방과 가게 딸린 곳이었는데, 방문을 바로 열면, 채소 가게를 하고 있었던 그런 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방이라서 해야 맞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유행했던 전기구이 통닭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기름기가 쫙 빠진 통닭을 아버지가 사 와서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과 아버지, 나까지 둘러앉아서 치킨을 먹는 데, 항상 닭다리는 나에게 주었던 기억......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내내 닭다리는 항상 내 차지였다.     

엄마와 여동생은 목과 닭날개를 먹었고, 남동생은 퍽퍽 살을 먹었는데, 나에게는 항상 닭다리를 주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큰 자식이기도 했고, 큰 딸이기도 했고, 집안의 기대주라서 이기도 한 것 같고,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마도 첫 번째라는 의미가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아버지 모두에게 나는 첫 번째였다.     

첫째의 의미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에, 본능적으로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알려진, 사람들 대다수가 좋아하는 닭다리를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닭다리를 먹는다.

지금도 치킨을 먹으면 닭다리부터 먹는데, 이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다가, 근래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기억이 나는 거였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도 내 기억에는 많이 있는 데, 가끔가다 이런 모습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고 했었던 절대다수의 기억들 중에서 닭다리라는 기억이 아버지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을 조금은 이해할 수는 있는 기회를 나에게도 주는 것 같다.

예전에 노희경 작가님이 쓴 드라마 중에 고두심 씨가 나오는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있다.     

작가님께서 자신의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악독하고 못된 아버지는 자신의 친아버지에서 비롯된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꽃보다 아름다워의 주현 씨가 맡은 역할이 자신의 아버지와 가장 비슷한데, 함께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자신의 친아버지가 주현 씨를 보고 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작가님은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사람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보여주어도, 자신이 했다고 생각을 못한다는 말과 함께 글을 쓰면서 조금씩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도 그런 걸까?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를 조금씩 이해하고, 부모를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닭다리 하나가 뭐라고 이런 생각까지 들게 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닭다리가 아니라 닭다리에 담긴 <첫째>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게 맞을 거다. 어쩌면 지금 깨달은 이 “이해”에 대해서 내가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좀 더 나은 방법으로 그를 대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생긴다.     

아버지도 큰 자식이었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자 했지만 내내 가족들과 사회로 인해서 좌절을 했었고,  그 좌절에 대한 실망감과 화를 풀지 몰라서 가족에게 그 뜻 모를 이유를 빌어서 분노를 했던 것을,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당시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당신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도와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나도 어렸고, 그저 나도 아버지의 행동과 행위를 보고 정당치 않음에 분노를 했던 아이였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고,  나는 아마도 나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알았던 걸 그때 알았다면 이라는 말이 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라는 말도.     

나의 후회는 닭다리 하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 커다란 것으로 발전하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슬픔은 사소한 어떤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말이다.     

오늘 하루가 아주 길고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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