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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9. 2021

다시 쓰는 마음 23

내가 서점을 하게 된 이유

작년 그러니까 2020년 추석 즈음인가? 다니던 곳이 팔릴지도 모른다는 소릴 들었다.

루머처럼 떠돌던 소식은 루머가 아니었고, 확실한 정보통(?)에 의해서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다니던 곳의 중식 술집 대표가 우리 매장이 영업이 너무 안되다 보니 근처에 있는 잘 나가는 대표에게 그곳을 넘기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 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 진짜로 우리는, 아니 나는 그냥 일로만 엮인 사이였구나..라는 걸.

서비스직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동료들과 손님들 간의 라포가 장난 아닌 경우가 생긴다.

특히나 우리처럼 작고 좁은 매장, 인원이 몇 명 되지 않은 곳은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은데, 하필 코로나가 터지고, 매출은 2019년에 비해서 반토막이 난 것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었는데, 대표는 이때다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는 서비스직에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직영에서 일하는 게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현실적 판단이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매장이 팔리면 당연히 그 매장을 그만두어야겠구나 라고 다짐을 하고 다니던 찰나에, 그런 소식을 들었고, 팔릴 때까지 대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모습에, 조금 실망을 했던 것 같다.     

하긴 기대를 한 것부터 잘못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1년 정도 더 있어야겠다는 마음은, 어느새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나는 2020년 11월 30일에 매장을 그만두었다.     

매장을 그만두기 전,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떤 걸 해야 먹고살 수 있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고, 이제 나이는 어디에 가기에 애매한 30대 후반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아직도 많았는데, 고민에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문득 서점이 떠올랐다.

서점인데, 서점만으로는 유지가 힘들 것 같아서 거기에 차를 판매하는 북카페 형식의 매장을 구상했다.      

구상이 현실로 드러나야 하는데, 실은 그때도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싼 매장을 만나야 했고,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어야 했고, 모퉁이에 햇빛이 잘 들어오는 매장이었으면 했다.     

그런 곳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는데, 게다가 서점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는 여유와 낭만의 이미지와 더불어 사양 사업으로 가고 있는 낡은 모습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깨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 이겠지만, 나는 서점을 하고 싶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는 했었다.

중학교 무렵,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빌린 학생에 뽑혔던 나 이기도 했었다.     

책은 나처럼 비루한 인생을 만난 인간에게는 혹은 정적이고 두려움이 많은 인간에게는 최고의 안식처이자 해결책이다.     


어쩌다 우연히 넘어진 돌부리에도 화를 내기보다는 돌부리가 그곳에 있음을 발견하지 못한 나 자신을 위로해주는 게 나에게는 책이었다.     


난폭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어머니 혼자 외벌이로 7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정에 있던 내가 그나마 온전히 나 자신을 바닥까지 내몰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상상만 하고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건, 모두 책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이제는 가진 자의 여유라고 불리며,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왠지 모를 캐캐 묵은 오래된 시선들이 머무르게 되었지만, 책은 여전히 나에게는 구원이고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존재였다.     

새벽에 하는 일을 버티게 해주는 것도, 하루에 16시간을 근무해야 했었던 날들을 이기게 해 준 것도, 매일 같이 짝사랑에 허덕이며 진짜 사랑은 두려워하던 나를 대찬 고백과 더불어 굳은 거절에도 버티게 해 준 것도 모두 책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구원 같은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난폭한 아버지에게 단 한 가지 배울 게 있었는데,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사 잡지를 오랫동안 구독해 왔었고, 매일 같이 신문을 읽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난폭해진 건, 그도 꽤 오랫동안 자신이 했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을 엄마나 가족들에게 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자신이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끝내지 못한 학업에 대한 미련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시사잡지와 신문을 구독한 것도 그런 이유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아버지에게는 미련이었고, 우리에게는 난폭함과 무서움이었지만, 그 와중에 그가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신문과 잡지를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도 마찬가지로 책이 구원이 돼버린 것 같지만, 그것 만큼은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주는 기쁨만큼 책 속에서 나는 위로를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고, 여전히 나는 위로와 위안을 같이 받는다.      


그 위로와 위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의 시작이 서점이었다.

책들이 가득히 차 있지는 않은 공간이지만, 서점 한편에 빽빽하게 꽂힌 책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슬픔과 위안을 풀 수 있는 책을 물어보는 손님들에게 책들을 권할 때면,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위로를 건넨다.     

쉽지 않은 길이라고 주변에서 모두들 응원을 보내는 요즘, 서점을 내가 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내 서점의 책들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위안을 주었으면. 

비록 내 서점의 책들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책이 다른 이들에게 응원과 희망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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