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복 Dec 01. 2021

다시 쓰는 마음 27.

첫눈

오늘은 조금 눈이 빨리 떠졌다.

어제 수업의 여파로 잠이 오질 않는 통에 새벽에 3번이나 깨어나고, 꿈속에서는 헤매고 이제 잠까지 확 깨서 눈을 떠보니 6시 45분이었다.     

말도 안 돼......     

일어날까 말까를 내내 고민하다가 다시 시계를 보니 진짜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평소와 똑같이 씻고, 나와서 날씨를 체크해보니, 눈이 오고 있단다.

말도 안 돼......     

현관문을 열고 보니 진짜로 모래알 같은 눈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비와 함께 눈이 온다.     

나는 눈을 정말로 좋아하는데, 왠지 나를 향한 응원인가? 하는 착각마저도 든다.     

어제 하루 종일 컴퓨터 커서가 깜빡이는 것만 보다가 컴퓨터를 꺼버렸다.

할 말도 없고, 쓸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서 내내 켜 두기만 하다가 더 이상 전력과 배터리를 낭비시킬 수 없어서 그렇게 컴퓨터를 껐는데, 누웠을 때도( 심지어 맥주 740ml를 마셨는데..) 생각이 안 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마구 마구 머릿속에서 이걸 쓸까? 저걸 쓸까? 하는 생각들이 조금씩은 나고는 했는데, 근래에는 그런 생각마저도 죽은 것 같아서, 괜히 슬프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지 않는 건, 분명 나의 글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지 하는 괜한 걱정이 든다.     

아니 어쩌면 괜한 걱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처럼 안 쓰이는 건 처음이다.

쓰려고 해 봐도, 걷고, 또 걷고, 눈을 감고, 분위기를 바꾸어보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심지어 애니메이션도 보고, 가끔가다 서점에 오는 손님들을 관찰해봐도, 영 – 아니다.     

그런데 눈이 온다.

잠깐 밖을 멍- 하고 내다보았다.     

분명 공기가 어제와는 다르다.

어제는 그냥 춥기만 했는데, 오늘은 무척이나 춥고 바람이 거세다.

밖에 나가면 내가 동태가 될 것 같아서, 서점 안에서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다시 비가 왔다가 눈이 함께 쏟아지는 걸 본다.     

허리를 숙이고, 찬 공기를 피해보려고 하지만, 찬 공기가 스멀스멀 위로 올라온다.     

차를 마시면서 생각도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차는 맛있는데, 맛있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완전 백지상태의 인간이 된 게, 꼭 내 상태가 첫눈 같다.     

처음은 늘 그렇듯이 어렵다.

내내 글을 써왔다고 해도, 나는 흉내만 낸 거지, 진짜로 글을 쓴 건 아니었고, 어떤 글을 썼다고 해도, 어제 수업에서처럼 무언갈 알고 쓰는 글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처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리는 첫눈 도 오늘 이곳에서 내리는 게 처음이겠지.

나도 거세게 한 번 내려 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쓰는 마음 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