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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Dec 13. 2021

다시 쓰는 마음 34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우리는 누구나 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못한 인간을 주변에서 겪어본 적이 없는 활동반경과 생활 거리가 아주 작은 인간이기에 그런지 몰라도.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옆에서 여러 번 보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같은 실수를 늘 반복한다. 그중에 하나가 스스로를 폄하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다시금 자기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능력 없는 인간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건데, 근래에 그런 일들이 좀 많이 일어났다.      

나의 자존감은 30%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오면서 가족들 사이에서 발현된 거라고 한다면, 나머지 70%는 사회와 나 스스로가 배워오면서 만들어진 건데, 실은 30%의 자존감은 많이 낮은 편에 속한다.     

가족들이 늘 서로와 서로를 이어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다정하고 따듯한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도, 그런 위로와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기대를 조금 하기는 하는 데, 늘 여지없이 기대는 무너지고, 다시 힘내서 이어보려고 하지만 끝내는 끊어지고, 이어 붙이기가 힘든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실은 가족들 사이에서 지루하게 자리 잡고 있던 부분 중 하나가 늘 마음속에서 상처와 눈치가 되어서 나를 갉아먹고 기생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꽤나 여린 편에 속한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실은 눈물도 많고, 슬픔에 자주 잠기기도 하는 편인데, 그런 나에게 늘 강요하던 게 가족들 특히나 엄마조차도 스스로는 약하면서 나한테 기대려는 모습 때문에 늘 강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폭력도 한몫했음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 아저씨를 대하는 게 조금 힘들고 어렵다. 와서 말이라도 걸라치면 금방 자리를 떠버리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그나마 타일과 미장을 배우면서 어른 아저씨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이제는 스스럼없이 대하는 내가 되었다.      

외모는 아마 내 생각엔 아직도 나는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는데, 책이 꽤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뻘쭘하게 튀어나오는 콤플렉스를 보면 나는 내 마음이 아직은 괜찮지 않구나를 느낀다.     

근래에 내가 세월을 얼마를 살아왔건 간에, 나 스스로가 만든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이 조금 생겼다. 물론 나 스스로가 충분히 버티고 인내하고 감수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60년의 세월을 생각했을 때, ( 100세 유병장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굳이 내가 이걸 인내를 하고 감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았던 내가 이런 생각을 갖은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모두가 고마워는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두 내 생각에 그칠 뿐이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더 나은 걸 해줬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또 깨달은 건, 아- 역시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구나 였다.     

나 스스로가 동생과 손절하고 난 후, 엄마와의 손절을 준비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꽤나 당연하게도 그런 부분에서 잘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나 보다. 실상은 애증의 관계에 있는 상대를 손절하려고 할 때, 그보다 훨씬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말이다.     

모두들 나에게 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 일을 그 수많은 세월 동안 하면서... 19살 이후부터 나는 엄마나 아버지한테 용돈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주 가끔가다 그들이 주는 적은 돈도 주머니에 있다가 동생들을 위해서 쓰거나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혹은 다시 돌려주고는 했다. 다른 방식으로......      

그런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큰 누나로서, 큰 딸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또 내가 1년 전에, 혹은 몇 달 전에 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오는 슬픔과 애증을 떠올리고, 다시금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데도 그게 실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 오는 멍해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슬픔이 된다. 

나는 스스로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 스스로가 되는 일이 너무나도 크고 힘들 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절대로 안 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줄여나가는 방향을 다시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도. 

오늘은 그 방법과 방향에 대해서 하루 종일 생각하는 일과가 될 것 같아서 조금 많이 기운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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