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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Dec 12. 2021

다시 쓰는 마음 33

노가리 가시

친한 언니가 서점에 왔다가 오는 길에 노가리와 쥐포를 가져다주었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다가, 노가리 가시에 그만 찔리고 말았는데, 깊게 박혔는지, 가시를

빼냈지만 그 부분이 내내 아픈 거였다.     

가뜩이나 하루 온종일 정신이 나간 사람 마냥 있었는데, 노가리 가시에까지 찔리고 보니, 온 우주가 나를 음해하고 아프게 하고 폄훼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가리 가시 하나에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이냐고 묻겠지만, 예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게 생각났다.     

“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 조각이 남이 걸린 더 큰 병보다 아프고, 남의 상처는 모래알만 해도 내 상처는 온 우주만큼 크다”라고.      

정확히는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내가 그랬다.     

다른 이의 상처를 내가 보듬어 주기에는 살짝 쪼그라드는 날들이 있고, 내 상처를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날들이 있다.     

가시에 찔린 날이 나에게는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니,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던 날. 

내 이야기에는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서글퍼지고, 덩그러니 혼자 동떨어져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말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못된 마음도 들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지 않은 데도 고깝게 느껴져서, 나도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감정이라는 게 웃긴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오늘은 또 하루를 망칠 정도로 나빠져서 노가리 가시에도 우주만큼 아픔이 밀려온다.      

고작 노가리 가시 한 개인데...

심지어 가시도 모두 뽑았는 데도, 엄지 손가락에 박힌 것처럼, 그 작은 뽑혔던 점 같은 상처를 보고 있으면 아프다.     

그러지 말아야지,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신경을 쓰면서 온갖 정신을 그 작은 점, 모래알 만한 점에 둔다.     

그리고는 아마도 하루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뒤로 젖혀두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나도 안다.     

가시에 찔렸을 때는 찔렸을 때보다, 찔리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이 더욱 아프다.

안 찔려도 됐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다 보니 찔렸는지도 생각이 안나는 데...      

여전히 아프다.

가시가 없는 대도,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언제쯤 가시라는 흔적이 사라질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니, 아마도,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생각은 여전하다.     

아마 내일 이면 사라질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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