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주 작은 내게 큰 기쁨이던 사람
동화, 브라네 모제티치의 <첫사랑>
당신의 첫사랑은 언제였나요. 처음으로 사람에게 빠졌던 때를 생각하자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예요. 보통 유치원에서 모든 게 처음 시작되지 않나요.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즐거웠던 순간은 드문드문 기억날 거예요. 보호자의 품에서 벗어나 또래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워요.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익히면서 세상의 크기 자체가 달라지잖아요. 근데 그 자연스러운 일들을 인정받을 수 없던 사람들도 있었대요.
동화의 주인공은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갑니다. 친한 친구도 없고, 동네 분위기도 뭔가 이상해요.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용감하지 않았고, 자주 울었고,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또래 아이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죠. 하지만 예술적 기질도, 멋진 꿈도 있었어요. 그의 첫사랑, 드레이크는 주인공과 달리 리더십이 있었고, 남자애들과 자주 치고받았어요. 주인공이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 주면서 둘은 소중한 추억을 쌓아요. 단짝이 되어 항상 함께 다니고, 꿈을 나누고, 주인공은 그를 위한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해요.
더 좋은 추억을 쌓아갈 수 있던 두 사람. 그들은 더 이상 친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교사가 둘을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진’ 두 남자아이를 떼어놓으려고 했거든요. 두 아이는 왜 어른들이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가장 소중한 사람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곧 한쪽이 떠나게 되면서, 그대로 어떠한 이야기도 진전되지 못한 채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고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죠.
이 책은 직접 상처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담담하게 어린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그 천진한 삽화 위에서 혐오와 편견을 읽어냅니다. 청소년기의 혼란을 다룬 책과 영화는 접해봤으나 이렇게 어린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도 당연한 정서, 마땅히 느낄 수 있는 감정부터 부정당했는데, 그다음 단계라고 수월했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듭니다.
실제로 이 동화를 집필한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자신 역시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달랐고, 그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어린 시절 차별적인 시선으로 인해 상처 받았을 아이를 위해 글을 지었다고. 이 책이 기억 저편으로 넘어간 그 시절에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정의 내려야 하는 경우가 없기를, 부디 무한한 자신감으로 반짝거려야 하는 그 시기에 위축되지 않기를 바라요.
‘난 그 애를 사랑했어. 그 애도 아마 그랬을 거야.’ 주인공은 말해요. 모든 것을 떠나 확신할 수 있는 시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나의 기억을 나눠 가진 사람이 아직 어딘가에 있을까요. 잘 지내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런 안부를 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