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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Jan 25. 2024

상처와 빨간약

2018년. 세 번째 마음 쓰는 밤

지난봄의 시간들.


 그 무렵 나는 매일 아침, 가라앉는 배에 승선하는 기분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내 아비 뻘이거나 그보다 더 된 임직원들을 돌아봐도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젊어서는 난다 긴다 하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찾아주는 이가 없으니 적당히 둘러보다 빈자리가 있어 들어찬 듯한. 그런 곳이었다. 그나마 그들은 적당한 핑곗거리라도 있었다. 저만 보고 있는 처자식들이 있어서, 아직 은퇴하기에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서, 갚아야 할 대출이 좀 남아서... 그런데 나는 딱히 그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사직서를 냈다. 지금 말은 쉽게 하지만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그곳에 들어가는 것도 너무 어려웠던 터라, 이렇게 나가면 또 아무 곳에서도 나를 찾아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났었다. 내 존재의 가치까지 의심하던 때였다. 늘 이쪽과 저쪽을 저울질하면서 답이 없는 고민에 술만 펐다. 나를 달래고 싶었던 건지 괴롭히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일상에서 달아나고 싶은데, 당장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인 것 같았다.


 그 봄, 그렇게 나는 자주 취해서 집에 들어갔다. 그러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날들이었다. 합리화지만 그땐 그랬다. 세세하게 그날들을 굳이 쏟아놓고 싶진 않다. 누군들 그러지 않고 사회생활 하겠냐만,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는 돌멩이에 자존심이 아파서 많이 울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곳 화장실에 쭈그리고 죽죽 울어댔는데. 계절만 봄이었다. 그 사무실은 이상스럽게 날이 푹해도 서늘했다. 이곳에서 마음 다친 직원들의 한이 서려서 그런다고, 우리는 농을 했었다. 울면서, 사정하면서, 혹은 역정을 내면서, 문이 부서질 듯 발길질을 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마다의 억울하고 서럽고 분한 사정들이 언제나 문 앞에, 수화기 밑에 쌓여 있었다. 무슨 대부업도 아니었는데, 겉은 번지르르한 건설회사였는데. 거긴 그랬다.


 그 봄, 나는 늘 취해 있었다. 술을 마시면 적당히가 없고, 비틀대며 집으로 돌아가 속을 게우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빠를 잡고 울었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고 살기도 힘든데, 아빠는 내 나이에 왜 자식까지 낳아 키우고 살았냐고. 아빠는 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냐고, 아빠 인생 살지 대체 왜 그러고 살았느냐고 엉엉 울었다. 그 밤, 아빠도 푹푹 웃으시면서 눈두덩이를 연신 찍어 내리셨다. 그날 이후 아빠는, 내가 아무리 술에 취해 들어오고 밤새 화장실에서 요란하게 굴어도 군소리 한 번 하지 않으셨다. 화가 잔뜩 난 엄마께도 “아무 말 마, 너 아니어도 애 힘들어.” 하시는 소리가 방문을 몰래 넘어왔었다. 꽤 성과 있는 주사였다. 죄송했지만.


 아무튼, 찌르르한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아침. 드문드문한 전 날 밤의 기억을 더듬거릴 때면 늘 머리맡에 기억에 없는 물 잔 하나가 놓여있었다. 눈도 채 뜨지 못하고 잔을 들어 꼴딱 한 모금 들이키면 그 물은 이상하리만큼 달고, 또 냉장고 냄새가 배어 있었다. 아, 얼음물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아마도 꿀물,


 사실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물에 냉장고 냄새만 스며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그 물이 달아졌다. 엄마한테 물으니, 잔뜩 취한 내가 엄마가 떠다 준 얼음물을 보면서 아주 속도 없이 “꿀물이야?” 하고 반가워하더란다. 그래서 엄마가 그다음 날 꿀을 사다 놓았다고. 술주정뱅이 딸을 둬서 꿀물 타려고 꿀을 산다고, 아주 개탄스러워하셨다. 그래도 그날부터는 머리맡에 미지근한 물이 늘 달았다. 얼음을 잘 꺼내먹지 않던 계절이라, 오래된 얼음 맛이 나서 엄마 몰래 가져다가 쏟아 버려야 했지만.


 엄마는 묵묵히 내 속을 달래주었다. 사춘기 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끝없이 고민하는, 아니 끝없이 고민만 하는 다 큰 딸을 겉으로는 여전히 한심해하고 못마땅해하시지만. 술냄새가 풀풀 나는 딸애의 머리맡에 놓인, 얼음을 동동 띄운 꿀물만큼은 묵묵했다. (아직 어리니 조금 더 방황해도 괜찮다는, 자식을 사자새끼처럼 독립적으로 키우시는 아빠의, 내 사춘기 때도 들어보지 못한 위로의 말처럼.) 사실 엄마 꾸중은 좀 따갑지만, 머리맡에 놓인 냉장고 냄새가 밴 얼음 맛 물만큼은 내 아린 속을, 그 무렵 아린 생을 달래주는 빨간 약이었다.


 초 여름, 나는 그 회사를 나왔고, 살벌한 폭염 속에서도 어느 때보다 평안하다.


 아, 이제 다행히 엄마의 꿀은 요리에만 쓰인다.

 여러모로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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