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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Aug 20. 2022

마음이 이완되는 순간

본격 귀파기 ASMR 영업


     평온하다 - 이불에 누운 몸이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듯 몽롱했다. 녹아내린 몸이 천천히 이불 아래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흐물흐물해진 몸은 이불을 지나 더 깊이 흘러 내려갔다. 깊고, 더 깊은 자리로 잠겼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흔적도 없이 흩어질 것 같았다.

그 순간 빠삭 - 하고 크게 튀는 소리가 귓속을 긁었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머릿속이 몽롱했다. 자유롭게 잠수하던 중 머리채를 잡혀 물 위로 끌려 나온 것 같았다. 정면에 어둑한 천장이 있었다. 놀라서 흐트러진 호흡이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바삭바삭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베개 옆에 엎어둔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니 영상은 이제 막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영상을 멈추고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잠들기 전 귀를 파주는 ASMR 영상을 듣고 있었다. 눈만 감고 있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듯했다. 귀 파기 ASMR 영상을 듣게 된 이후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영상을 틀었다. 이젠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은 습관이건만, 잠이 들려는 찰나 물 밖으로 끌려 나오듯 잠에서 깨는 건 늘 생경했다.

다행히 오늘은 다시 누워 눈을 감으면 금방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드폰과 에어팟을 정리하는 사이에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머리맡에 켜둔 스탠드를 완전히 끄고 자리에 바로 누웠다. 이마를 덮고 있던 안대를 눈 위로 내리자 완전한 어둠과 완전한 적막이 찾아왔다. 눈을 감았다.


맙소사. 잠이 싹 달아났다.



     백색소음을 좋아한다. 파도 소리나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았다. 모닥불 타들어 가는 소리를 특히 좋아해서 글을 쓸 때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영상을 켜두곤 했다. 이때는 ASMR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친구가 특이한 ASMR이라고 보여준 영상에서 유튜버분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는 걸 본 게 전부였다. 그러다 신묘한 알고리즘의 힘이 귀 파기 ASMR을 피드에 띄워줬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귀를 파줘? 그다음엔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귀 파기 ASMR을 듣게 됐다.


     귀 파기 ASMR 영상을 듣고 있으면 바스락대는 소리를 따라 잠이 솔솔 몰려오면서 눈이 살살 감겼다. 눈 닿는 곳곳에 몸을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던 불안도 그때만큼은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잠깐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온 힘을 다해 경계하고 있던 마음이 슬슬 팔다리를 뻗으며 이완되는 게 느껴졌다. 단순히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불과한데도 이상하게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게 좋아서 쉬고 싶을 땐 귀 파기 ASMR을 들었다. 잠들기 전에 귀 파기 ASMR을 듣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귀 파기 ASMR은 모든 게 다 좋았는데, 아쉬운 점이 딱 두 가지 있었다.

하나,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잘 수 없다. 잠들기는 했는데 자던 도중에 화들짝 놀라면서 깨어났다. 아마 돌아눕는 과정에서 이어폰이 거슬렸거나 이어폰을 오래 끼고 있느라 귀가 아팠기 때문일 거라고 혼자 추측하고 있다.

둘, 이어폰 때문에 자다가 깨서 이어폰을 정리하고 자기 위해 누우면 그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귀 파기 ASMR을 들을 때 몰려왔던 졸음이 거짓말인 것처럼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다행히 5분쯤 뒤척이면 다시 잠들긴 했지만, 이때 ASMR로 잔잔하게 정리됐던 무언가가 잔뜩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둘 다 내 문제고, 아주 사소했기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사소한 아쉬움에 비해 ASMR로 얻는 평안이 더 컸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귀 파기 ASMR을 듣고 있다. 귀 파기 ASMR 자체에 질리지 않는 한은 계속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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