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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Aug 13. 2022

초침을 잊지 않고


     내가 두 사람 정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 고 생각한 적 없나요?


     나는 내가 두 사람 정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셋이서 분담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고, 쟤는 취업 준비를 하고, 남은 하나는 집안일을 하는 거다. 하기 싫은 일을 셋이서 힘을 합쳐 빨리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저번 자소서만 해도 그랬다. 내내 머리를 쥐어뜯고, 터뜨릴 것처럼 굴어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때 만약 내가 세 사람이었다면?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얘기를 나누면서 소스를 얻을 수도 있고, 쓰다가 지친 내가 바톤을 넘길 수도 있었을 거다. 물론, 이건 “희망” 편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셋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잘 그려낼 수 있다. 나는 “절망” 편에 가까운 사람이다.

절망편은 단 한 줄로 묘사가 가능하다.

셋 다 엎어져 잔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마주했을 때, 일단 나는 운다. 하기 싫다고 발버둥 치면서 악을 쓴다. 하기 싫은 일을 했을 때의 상황을 1부터 100까지 전부 상세하게 상상해본 다음 모두 끝내 본 것처럼 진이 빠져 그 자리에 드러눕는다. 그 상태로 다른 모든 일도 내팽개치고 핸드폰만 본다. 물론 이때도 마음 편히 쉬고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려가며 누워있는다. 언제까지? 발등으로 성큼 다가온 불길에 발등이 따땃해질 때까지. 그렇게 날려 먹은 시간을 제대로 세어보면 6, 7년은 족히 날리지 않았을까?


새삼 무거워진 마음으로 흐린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굴렸다. 동그란 시계 속 바늘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시침에서 이따금 움직이는 분침으로, 이윽고 매 순간 쉼 없이 달리는 초침에 시선이 닿았다. 한 칸, 한 칸 움직이는 초침을 따라가는 사이 어느새 분침이 한 칸 나아갔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쉼 없는 한 칸으로 쌓아 올려졌을 내가 떠올랐다. 나는 언제나 어느 한 구간에 멈춰서 언제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는지 세월을 돌아봤다. 하지만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칸씩 나아가고 있는 초침이었다. 수많은 한 칸이 쌓여 여기까지 왔고, 동시에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날려 먹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날려 먹을 시간”이 문제였다.



     초침과 같은 속도로 달려온 생각에 숨이 찬다. 내가 둘 정도 더 있으면 날려 먹은 시간과 날려 먹을 시간 모두를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보다 더 확실한 정답이 코앞에 있다.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한동안 펼치지 않은 다이어리를 가져와 펼쳤다. 지난달 중순에 마지막으로 쓴 다이어리에 오늘 날짜를 썼다. 오늘 할 일은 무엇인지,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무엇인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찬찬히 톺아보며 한 글자, 한 글자씩 힘주어 눌러 썼다. 내가 둘이나 더 생겨 그간 날려 먹은 시간과 앞으로 날려 먹을 시간 모두 만회할 수 없을 테니, 남은 나 혼자서라도 앞으로 날려 먹을 시간을 최소화해보자고, 조금 늦은 다짐을 하며 열심히 펜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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