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쓴 일기를 다시 읽는 일이 드물다. 악필로 작게 쓴 글씨를 읽는 게 귀찮아서, 양이 많아서 - 이유는 많지만 다 핑계였다. 읽기 좋게 정리된 주간열음도 다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간열음 초고는 많아야 두 번 정도 퇴고했다. 사실 두 번의 퇴고도 드물고, 대부분 업로드 당일에 가볍게 읽으면서 고쳤다. 왜냐면 - 주간열음은 가볍고 꾸준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시작된 글이었으니까. 말하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가볍고 꾸준하게 - 의 “가볍고”가 대충 쓰는 글이라는 의미의 가벼움이었나?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를 돌아보게 된 데에는 부끄러운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주간열음에 올릴 글을 퇴고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글 속의 내가 지나치게 징징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 속의 나는 이전의 내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얘기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끝에는 축축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으며 식은땀이 났다. 그날은 주간열음을 올리는 날이었다. 미리 써둔 글이라고는 그 순간 내가 읽고 있던 자기연민의 끝을 달리는 글 하나뿐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모든 계획을 엎고, 주간열음에 올릴 글을 새로 썼다. 그때 나는 글을 새로 쓰면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글의 “가벼움”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은 거울이다.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에는 글 속에 글을 쓰는 내가 섞여 들어간다. 나는 그날 내가 쓴 글 속에서 몹시 못난 나를 봤다. 나밖에 모르는 나. 실은 나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 그런 주제에 되지도 않는 말을 가져와 잔뜩 포장해 놓은 것을 보고 있으니 화보다 당혹감이 앞섰다. 타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쓴 글에서 자기연민에 도취된 나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혹스럽고 창피하다가 덜컥 겁이 났다. 어쩌면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지난 글 중에도 나의 못난 면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이 있을지도 모른다. 양팔을 넓게 벌려 온전히 펼치기도 전에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벽이 닿았다. 고개를 들자 달이라고 생각했던 하얀 원이 밀려나면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들어찼다. 암담했다.
다행히 예전처럼 창피함을 견디다 못해 모든 게시글을 비공개로 돌리고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자기연민의 끝을 달리는 글을 미리 발견하고 걸러낼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다만 앞으로 다시 반복될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뻔했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명확한 답이 있는 문제 같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했다.
많이 쓰고, 쓴 걸 잊고, 다시 읽고, 고쳐 쓰기.
한 주에 한 편 올리는 주기에 맞춰 부랴부랴 글을 써내거나 퇴고하지 않고, 가능한 많은 일기를 쓰고, 내가 쓴 것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할 것 - 한숨이 푹푹 새지만 이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꾸준히, 최대한 많이 쓰고 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