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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12. 2019

별이 쓸리는 밤

그 날의 꿈들


"별이 쓸리는 밤이었다."
황순원, [카인의 후예]


가끔은 참으로 누군가 빗자루로 흩뿌려 놓은듯한, 그렇게 별이 쓸린 밤이있다. 매캐한 미세먼지와 뿌연 스모그로 덮인 수원의 빌딩숲에도 그렇게 별이 쓸린 밤이있다.

보통 한 7시? 신촌에서 수원으로 내려가기 위해 2호선에 몸을 실을때면 으레 하는일이 있다. 신도림으로 향하는 녹색 지하철이 들어오고 도어가 열리면, 바로 맞은편 도어로 바싹 붙는 일.  스모그같이 뿌옇게 사람으로 가득차서 도어가 채 열리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지하철이든, 정차하고 도어가 열릴때까지 지나가는 칸들을 보며, "아! 앉아서 갈 수 있겠구나"라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는 지하철이든, 나는 맞은편 도어로 간다. 적어도 당산역을 지나기 전까진 그렇게 서서 갈 요량으로. 한강을 보려고.

2호선 열차를 타고 문옆에 딱 붙어 당산을 지날때면 보이는 한강. 그 해질녘 어스름이 지고 있는 한강. 지하철 안까지 스며들어와, 밖인지 안인지 구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 어스름.

그 어스름을 느끼고 수원에 도착하면 꼬박 밤의 시작이다. 주홍색 어스름은 온데간데 없는 수원의 밤. 여기에 내가 귀갓길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그 수원의 밤하늘. 나는 맞은편 도어로 내달린 것과 같이, 지하철 개찰구를 찍고 나오면,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며 꼭 고개를 젖힌다. 당산에서의 그 어스름은 지금의 밤하늘을 위해서 일 것이다. 마냥 맨날 볼 수는 없지만, 어쩌다가 문득. 가끔가다 한번씩. 누군가 비질을 한 것처럼 별이 흩뿌려져있는 수원의 밤하늘을 위해서.

별. 한낱 눈앞에 가로등 보다도 밝지 않은데 경이롭다. 함부로 내던져진 모래알처럼 그려져 있는데 아름답다. 가늠할 수 없는 머나먼 곳에서부터 시작해 내 눈에 이르기까지의 그 과정들이 신비롭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보는 것만 같아 황홀하다.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대한 별들은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손톱보다 작은 빛만 내보낸다. 그렇게 조그맣지만 지워지지 않는 겸손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어린시절, 그 겸손한 위대함 앞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보은에 어느 시골 마을, 참나무가 즐비한 금강산 자락에서 나는 그 수놓인 별들을 보며 미래를 상상했다. 황홀함 속에 숨겨진 가슴벅찬 꿈.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꿈을 나는 꾸었다. 검정하늘에 박힌 빛나는 모래알들 아래서 나는 화성에 가는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해외를 돌아다니는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었다. 법정에서 무고한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었고, 급박한 생명을 살리는 응급실 의사가 되었다.

  시간의 길을 따라온 그때의 감정이 나를 자극한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느낌. 당장이라도 우주복을 입고 화성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느낌.

횡단보도를 건넌다.


"참으로 별이 쓸리는 밤이 있다. 가끔이지만 그런 밤이 오늘이다. 별이 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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