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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12. 2019

수원의 자취방

내 방....


8시 16분.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일어난 하루였다. 매일 듣던 알람 소리인 Maroon5의 "Lucky strike" 말고, 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상우의 "일어나! 그만 자 이 새키야!!" 라는 말로 햇빛을 맞이했다. 뭐 이미 약속된 아침이니까 놀랄 건 없었다. 전날 자기 전에 생각해 놓은 대로 상우에게 과일을 씻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씻었다. 다 씻고 나오니 상우는 어제 우리의 단골집인 예국향에서 사 놓은 새우볶음밥을 데우고 있었다. 나는 얼른 출근할 준비를 하고 상우를 도왔다. 아.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설명을 안 했구나 참.

어제 갑자기 상우에게 전화가 왔다. 학원을 마치고 지친몸을 이끌고 하루의 마지막 심지를 불태우려 헬스장에 가는 길이었다. 뭐 심심하면 전화하는 친구니까 익숙하게 받아서 익숙하게 말했다.

"왜."

 근데 수화기를 넘어온 대답이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 여자친구랑 롯데월드를 가기로했는데, 도시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었다. 네가 도시락을 만든다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친구인데, 어지간히 여자친구가 좋은가보다 하며 전화한 용건이 무엇이냐 물었다. 간단했다. 도시락을 만들어본 적 없으니 도와달라. 나도 한 번도 안 만들어 봤지만 까짓거 알았다고 했다. 내일 아침까지 재료를 사서 내 방으로 오라고 했다. 내가 출근이 9시 20분이니, 적어도 1시간정도는 일찍오라고 했다. 든든한 동행이라도 구했다는 듯 기분 좋게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아 근데 내일 현희도 불렀다" 하고 끊었다. 혹시 남자친구도 있는 후배가 남의 자취방에 들락날락해서 문제가 될까 싶었는데, 현희야 뭐 나랑도 친하고 상우랑도 친하고. 현희 남자친구도 나랑 친하고 상우랑도 친하니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이었다. 내가 씻고 나와 준비를 마칠 즈음에 현희도 상우처럼 내방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렇게 쉬운 현관문 아닌데 벌컥벌컥 여네. 나도 얼른 준비를 마치고 도시락 싸는 걸 도왔다. 각자 분담을 해서 현희는 유부초밥을, 나는 달걀주먹밥을, 상우는 베이컨말이를 했다.
내방은 4층이라서, 게다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아침엔 햇빛이 잘 든다. 이케아에서 산 것 같은 (하지만 그냥 옥션에서 2만원 주고 샀다.) 회색 암막 커튼을 걷으면 아침 햇살이 들어와 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내가 없는 동안 너와 너의 방과 너의 고양이는 안녕했냐는 듯이. 그렇게 나랑 상우랑 현희랑 우리 고양이랑 아침 햇빛이랑 도란도란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 기분을 더 묘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가 더 있었다. 상우랑 현희는 경상도 출신이다. 상경해서 서울 친구들과 있을 때도 뚜렷한 사투리를 보여주는데, 둘이서 얘기한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구수하고 걸쭉한 사투리가 나오겠는가. 그것도 참 기분이 묘했다. 수원의 자취방에서 사투리를 들으며 도시락이라니.

그렇게 도란도란 완성된 도시락을 가지고 상우는 내 방을 나갔다. 현희도 수업이 있어서 금방 따라 나갔고, 나도 출근을 위해 집을 뒤따라 나왔다. 퇴근할 때 즈음 상우에게 카톡이 왔다. 도시락은 여자친구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여자친구가 말하길 현희가 만든 유부초밥이 제일 맛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럼 뭐가 제일 맛 없었냐고. 음. 내가 만든 주먹밥이 제일 별로였다고? 그럴 리 없는데.

묘한 하루의 첫 시작 때문인지, 오늘은 내내 힘들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미래의 추억을 쌓아가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와 씻고 나와도 그 느낌은 쉽사리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이제 자야지.

아침에 못 들은 "Lucky strike"나 들으며 자야겠다.

아. 근데 잘 수 있을까? 워낙 신나는 곡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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