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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25. 2019

북극권 최대의 도시, 무르만스크

무르만스크. 87일 세계일주 #5

   오로라를 본 다음 날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났습니다. 휴대폰을 보니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은 오로라 헌팅을 하지 않는다는 D의 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당장 내일이면 이 곳을 떠나야 하는데, 어제 오로라를 본 게 정말 다행이었네요. 문득 정오인데도 숙소가 너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겠다 싶어 커튼을 시원하게 젖혔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웬걸. 주홍빛 가로등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북극. 겨울엔 극야 때문에 해가 뜨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도 시간상으로는 아직 한창 활동할 오후니까, 이 무르만스크라는 도시나 둘러볼 겸 몸을 단단히 싸매고 바깥으로 나섰습니다.


   무르만스크라는 도시는 상당히 적막한 것 같았습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볼거리를 찾아봤는데, 기껏해야 있는 건 '세계 최북단 맥도널드'와 '세계 최초 원자력 쇄빙선' 정도?


   그래도 여기까지 와봤으니 둘 다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원자력 쇄빙선 먼저 가봤습니다. 음. 어제 오로라를 봐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세계 최북단 맥도널드의 빅맥은 매우 짰고요. 무엇보다 관광을 더 하기엔 너무 추웠습니다. 두 군데만 후딱 돌아보고 얼른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새 얼어붙은 몸도 녹일 겸, 프라하에서 받아놓은 영화도 볼 겸 이불속에 비집고 들어가 누웠는데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S : “오로라 헌팅은 어땠어? 듣기로는 정말 놀라웠다는데. 내일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내가 공항까지 태워다 줄게. 만나면 얘기해줘.”
나 : “정말?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태워준다니 정말 고마워!”

음. 도시는 정말 적적하기 그지없는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습니다. 어제 오로라 헌팅을 도와준 D부터 해서 여기 호스트 S, 그리고 첫날 만난 택시기사도 무척 친절했습니다.(ATM에서 돈을 뽑아야 한다고 했더니 공짜로 바래다주고 기다려 줬습니다)




   다음날 아침, 공항까지 가는 길에 S는 즐거운 듯 연신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S : “YEOM. 그렇게 멋진 오로라를 봤다니 내가 다 행복하다. 허탕 치고 간 사람들도 많은데. 넌 정말 운이 좋은 친구야. 그나저나, 세계일주가 끝나면 뭘 할 거야?”
나 : “음. 나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어. 잠깐 휴학했지. 얼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 거야. 돈을 모아야 하거든. 아마 엄청 힘들겠지? 남들보다 1년이나 늦었으니까.”
S : “좋네 멋있어. 너 전공이 기계공학이라고 했나? 나도 원래 엔지니어였어. 이곳 무르만스크에서 자동차를 고치는 일을 했지. 그런데 어느 날 이곳에 여행 온 일본인들이 찾아왔어. 그들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스팟(spot)을 찾아가기 위해 차를 렌트했는데, 타이어에 체인을 좀 씌워줄 수 있냐고 했지. 나는 기꺼이 도와줬어. 그 사람들 무척 친절하더라고. 어쩌다 보니 친해졌는데, 그날 밤 나도 같이 오로라를 보러 갔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스팟이 있거든.”
나 : “오! 정말? 멋있다. 너 엔지니어였구나? 그런데 지금은 호스트를 하고 있는 것 아냐?”
S : “맞아. 그날 이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되었어.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전부 털어 에어비엔비 숙소를 마련하고, 근처에 눈썰매 투어 업체를 운영하게 되었지. 너도 눈썰매 한번 탔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전혀 없어 보여서 말하지 않았어.”
나 : “오늘 나 정말 심심했는데! 아쉽다. 그나저나 네가 원하는 일을 찾은 거구나? 어때? 행복해?”


    행복하냐는 저의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엊그제 본 오로라만큼이나. S의 이 한마디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거든요.

    


S : "응. 아주 행복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았어.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거야.
네가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오로라를 본 순간처럼,
네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걸 이뤘던 순간처럼.
너의 인생도 그럴거야.
결국 네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될거야.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인생의 오로라를 보게 되어있어.
그때까지 차분하게. 아등바등할 필요 없어."


인생의 오로라. 정말 멋진 말인 것 같아요. 차분하게. 조급하지 않게.

S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게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기념으로 한국 동전도 줬습니다.





근데 차에서 내리고 보니 비행기 시간이 조금 촉박합니다.

이건 차분하면 안되니까 얼른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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