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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Nov 24. 2021

언어를 바꿨다.

휴대폰도 바꾸고



아이폰X. 아이폰 엑스? 아이폰 텐? 어쨌든. 나는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내내 독특한 휴대폰만 썼다. 가령 RIM(Resarch in motion)의 블랙베리 스마트폰이라던가, HTC 회사 스마트폰 시리즈라던가. 국내에선 판매하지 않기에 항상 공기계를 구매해서 썼다. 조금씩 꼬박꼬박 모은 용돈이랑, 쓰던 휴대폰을 중고로 팔아서 합친 돈으로 항상 새것 같은 중고를 사서 썼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번엔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더라. 그래서 바꿨다. 약정 걸고. 부모님 찬스도 썼다. 가족 형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휴대폰 요금이 50%나 할인되기 때문에(가족결합) 기계가 아무리 비싸 봐야 한 달에 6만원도 안 나온다. 그래서 조심스레 부모님께 물어봤다. 난생처음으로 "휴대폰 바꾸고 싶어요."라고.

아무튼 그렇게 얻게 된 스마트폰이 아이폰X다. 애플 특유의 여백의 미를 강조한 상자의 비닐을 벗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영롱한, 하얀 유리 배경에 반쯤 먹은 사과를 그려놓은 스마트폰을 드러났다. 전원을 켜고, 각국의 언어로 반가운 인삿말이 쓰여 있는 화면을 지나 초기 세팅 단계에 들어섰다. 당연히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국가와 언어'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휴대폰을 자주 중고로 바꿔왔기에 익숙하게 오른손 엄지로 스크롤을 내려 우리나라를 찾았다. 영어로 우리나라를 쓸 땐 대개 두 개의 표기법을 쓴다. 하나는 'Republic of Korea' 또 다른 하나는 그냥 'Korea'. 그러니까 우리나라 찾으려면 먼저 쭉쭉 내려서 'K'로 시작하는 나라 중에서 보고, 없으면 조금만 더 내려서 'R'로 시작하는 곳에서 찾으면 된다. 그렇게 'R'로 시작하는 곳에서 우리나라를 찾았고. 으레 평소와 같이 터치를 하려는 순간. 무언가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내가 내린 스크롤 속도보다 빠르게. 난 이제 2달 있으면 떠난다.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 아닌가? 작고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준비해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가면 이제 한국어는 보기도 힘들 텐데, 지금부터 영어에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 영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도 생각났다.

 "영어에 익숙해지는 법은 영어에 많이 노출되는 거야."

 그래. 지금은 내가 학원 선생님이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선생님에게 배운 교훈을 받들어 볼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휴대폰 스크롤을 좀 더 내렸다. 그리고 "United States"를 선택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알파벳의 향연 속에서 어색함을 견뎌내고 휴대폰 세팅을 완료했다.

어찌보면 막연했던 목표들이 정말 하나씩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목표라는 옥상을 향한 계단에 한걸음 더 올라간 느낌이랄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한 계단. 첫 비행기표를 샀을 때 한 계단. 사소한 휴대폰 언어 하나 바꿨지만 그래도 한 계단.

그러고보니 아직 반오십도 안살았지만, 살다보면 가끔 단순하고 심심한 것에서 새로운 감회를 얻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가령 Maroon5의 재생목록을 듣고 수험생시절의 그 열정이 생각난다던가, 퇴근길 64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엄청나게 큰 달을 보고, 중학생 때 처음 산 싸구려 망원경으로 달의 크레이터를 찾아봤을 때의 그 순진함이 생각난다던가. 은근히 기분이 좋은 느낌. 뭐랄까 그런느낌이다. 학창시절, 단풍나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가을날. 이 수업만 끝나면 점심 시간이여서 기쁜 그 4교시에. 더하여 체육시간. 들뜬마음에 준비운동겸 운동장을 한바퀴 뛰는데, 하늘이 무척 높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단풍나무의 옷가지들이 얹혀 불어올 때. 그런 기분 좋은 느낌?

그래서 내 휴대폰의 재생목록 1번은 항상 Maroon5의 곡들만 모아져 있다. 가끔씩 그런거 느끼면 좋잖아. 한겨울이든 한여름이든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잖아? 안 그래? 나만 그래?.

어찌 보면 막연했던 목표들이 정말 하나씩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목표라는 옥상을 향한 계단에 한 걸음 더 올라간 느낌이랄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한 계단. 첫 비행기 표를 샀을 때 한 계단. 사소한 휴대폰 언어 하나 바꿨지만 그래도 한 계단.

그러고 보니 아직 반오십도 안 살았지만, 살다 보면 가끔 단순하고 심심한 것에서 새로운 감회를 얻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가령 Maroon5의 재생목록을 듣고 수험생 시절의 그 열정이 생각난다던가, 퇴근길 64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엄청나게 큰 달을 보고, 중학생 때 처음 산 싸구려 망원경으로 달의 크레이터를 찾아봤을 때의 그 순진함이 생각난다던가. 은근히 기분이 좋은 느낌. 뭐랄까 그런 느낌이다. 학창시절, 단풍나무의 털갈이가 한창이던 가을날. 이 수업만 끝나면 점심시간이어서 기쁜 그 4교시에. 더하여 체육 시간. 들뜬 마음에 준비운동 겸 운동장을 한 바퀴 뛰는데, 하늘이 무척 높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단풍나무의 털과 섞여 불어올 때. 그런 기분 좋은 느낌?

그래서 내 휴대폰의 재생목록 1번은 항상 Maroon5의 곡들만 모여 있다. 가끔 그런 거 느끼면 좋잖아. 한겨울이든 한여름이든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잖아? 안 그래? 나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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