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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12. 2019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듯.

염광섭
회사 그만두고 유학을 갑니다. 독후감
13 October 2018

"아니".
아니 진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책 한권 읽었을 뿐인데 잘한 걸 잘했다고 해주지 않는 군시절 맞선임이 생각났다. 내가 갓 일병이 되었을 때다. 그 당시 새로 받은 직무에 할당된 맞선임이 있었는데, 무언가 시킨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좋은 성과도 나와서 "저 잘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말은 "아니" 였다. 사격에서 만발을 쏴도 "아니", 체력평가에서 특급을 받아도 "아니", 청소를 번쩍번쩍 깔끔하게 해서 행보관한테 칭찬을 받아도 "아니" . 솔직히 이쯤되면 궁금했다. 잘하는 후임이 질투나서 아니라고 하는 건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 라는 말에 정말로 "아니... 진짜 왜그러십니까?"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한참 윗 선임이 그 이유를 말해줬다.

처음엔 그 이유를 듣고나서 어이가 없었다. 갓 일병 달게 된 애를 칭찬하면 자만심에 가득차서 중요한 일을 그르치거나 혼자 행동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언젠가 한번 완벽한 후임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봤자 내가 아는 선임들중 한명이겠거니. 어쨋든. 그 후임은 이등병때 부터 가르쳐주는 건 스펀지같이 습득 했고, 눈치하난 기가막히게 빨라서 모든 일을 센스있게 처리 했다고 한다. 선임들은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고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칭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게 문제 였다. 일병을 달면서 일을 좀 더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이다. 꽤나 큰 잘못이었고, 그 후임은 결국 다른 부대로 차출 되었다고 한다. 자만심이 부른 문제라나 뭐라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같은사람도 아니고. 열심히 한 일병 무색하게. 칭찬이라도 한마디 해줬으면 좋잖아? 라고 혼자 생각하며 그 이야기를 들었던 옛 기억이 비집고 올라왔다. 지금에 와서 이 기억이 새록새록한건 "회사 그만두고 유학을 갑니다."라는 책을 읽고 무언가 깨달은게 있어서다.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저자는 다니던 근사한 회사를 그만두고, 여태껏 모아둔 돈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하고싶은 미술공부를 위해 유학 선택했다. 그 선택을 하는 과정, 그 순간순간의 에피소드, 느낀 감정들을 하나하나 꾹꾹 문장에 눌러 담았다. 마지막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팁까지(이 부분은 안읽었다. 시간이없어서 ㅎㅎ). 평범한 한 사람의 도전을 담은 에세이였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일을 겪었다.

책의 중반까지 흥미롭게 읽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주려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에는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하는 어떤 직접적인 말도 실려있지 않았다. 작가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자신의 문체로 이야기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겸손했다. 그 시절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겸손함. 쉽지 않은 결정들과, 여태껏 살아온 삶들을 통해 작가는 분명 어떠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매개로 책을 썼을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유학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런 선택을해서 행복하다. 그러니 너희도 이런 선택을 해라." 라는 뉘앙스는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읽기도 편했다. 나는 담담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책속에서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교훈을 받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책, 특히 수필의 특성이 그러한 것 같다. 누구에게 보여주기위한 수필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필도 있다. 남에게 하는 강요는 불편함만 느끼게 할 뿐이다. 제각기 고유한 채널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그저 내 이야기만 재미있게 풀어내면 되는 것 같다. 그런게 책이고 그런게 글쓰기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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