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부품들
자동차. 그 안엔 부품도 당연히 있다. 바퀴, 엔진, 핸들 등등.
여기서 질문.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무엇일까? 엔진? 바퀴? 음 그럼 하나만 더. 우리의 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어디일까? 뇌? 심장? 위의 두가지 다른 질문에 답은 하나다. "없다". 정답도 없는 질문을 왜 했냐고? 정확히 2년 전 9월. 아마 인생의 진리가 될지도 모르는 교훈을 너트에서 얻는 날. 막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 때부터 이야기 해야한다.
입대한지 막 3달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5주간의 짧지만 길었던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당당한 특전사가 되려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나는 이곳에서 특전사처럼 멋있게 총쏘고, 하늘에서 낙하산을 매고 떨어지고, 5분도 넘게 잠수해서 적진에 침투하고, 산속에서 들짐승을 잡아먹으며 30일을 견디는 훈련을 받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갓 들어온 이병에게 주어진 훈련은 풀을 깎는 것이었고, 부대 뒷산, 듬성듬성 소나무가 솟아있는 길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능선을 따라 구덩이를 파는 것, 내 덩치보다 큰 두루마리 휴지 같이 말린 케이블을 어깨에 메고 다시 그 산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존재하는 사람인데, 그것에서 군 생활의 의미를 찾아야했는데. 총을 쏘고 경계근무를 서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져야했고, 그렇게 존재 이유를 찾았어야 했는데.
군 생활의 근간이 흔들리자 이병에게 주어진 훈련들이 너무도 힘들게 다가왔다. 그 어려운 열역학도 혼자 공부했는데, 삽질도 제대로 못했다. 어렸을 때 금강산을 동네 뒷산 뛰놀듯이 다녔는데 이제는 케이블 하나 들고 산도 제대로 타지 못했다. 혼났다. 군에 오기전에 어렴풋이 듣기만하던 "니 위로 내 밑으로" 라는 말도 실제로 들어봤다. 단 하루도 나의 몸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고, 반대로 나의 정신은 단 일분도 이성의 끈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바빴으면 주중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잠자기 직전의 그 틈이었다. 점호가 끝나고 불을 끄고 누워서, 지친 나의 몸이 잠들기 전까지의 그 순간을 항상 만끽했다.
그렇게 바쁜 주중이 끝나고, 선임들 눈치에 제대로 누워 쉬지도 못하는 토요일도 지나면 일요일이 왔다.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고 하던가. 이병에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일'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지친 삶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종교의 자유는 보장해주니까. 딱히 어떤 종교를 믿진 않았지만 생활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했다. 주로 가던 곳은 절이었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절에서 종교행사를 진행했는데. 간혹 대웅전에 앉아있다보면 산속에서 노루도 볼 수 있었고 어렸을 적 고향에서 열심히 잡던 사슴벌레도 볼 수 있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고, 풍경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맘이 평온해 지기도 해서 자주 갔던 것 같다.
여느때와 같은 일요일 오전. 너트가 나에게 교훈을 준 그 날이었다.
북한산의 절에선 가을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높았다. 시원한 바람에 앉은 풍경소리가 들려올 즈음 스님께서 들어오셨다. 으레 평소와 같은 인사를 나누시고 본격적인 법어를 시작하셨다. 그 처음은 질문이었다. 바로 내가 위에서 했던 질문. 같은 질문에 선임들은 제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다.
1.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 엔진. 핸들
2.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 심장. 뇌
그리고 스님은 같잖은듯 병사들을 보며 정답을 말해주셨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얹어서.
"정답은 없대이. 중요한 부분이 어디있어? 엔진이 없으면 자동차는 굴러가지 못하지. 그건 바퀴가 없어도 마찬가지여. 심장이 없으면 사람은 죽어. 그건 뇌가 없을 때도 마찬가지고.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건 없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야. 잘 들어보래이. 2011년에 KTX가 광명역에 들어가면서 탈선을 했어. 교통부에서 조사에 나섰지. 느그들 그렇게 나온 결과가 뭔지 알아? 너트. 너트가 하나가 없었어. 엄지손가락만한 너트 하나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기차가 탈선을 했다는거지. (침묵) 이제 공양할 시간이다. 여기 앉아있는 너희들은 자주 오는 친구들이니, 내가 무슨말 하는지 알거라 믿는대이." 법어는 그렇게 짧고 굵게 끝이났다. 알아 듣는 선임 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선임들도 있었다. 나는 확실히 알아들었다.
군시절 나의 병과는 '정보통신'이었다. 나중에 바뀌긴 했지만 이병때는 그랬다. 그리고 정보통신의 핵심은 "정보전달"이었다. 적진에 침투한 요원들이 그 지역의 정보를 송신하면, 받아서 정리하고 상부에 보고하는게 우리 임무였다. 불시엔 직접 가서 정보를 얻어오는 일도 해야했고. 그리고 그렇게 정보를 송수신하려면 여러 조건이 따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건 송수신케이블. 보통은 무선 전파를 이용하지만 적의 EMP 공격을 가한다면 무선통신장비는 무용지물이기에, 비상시 운용할 유선케이블이 필요하다. 내가 그렇게 꾸역꾸역 파내던 구덩이는 그 케이블을 심기위한 것이었고,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기어가듯 올라가게 한 그 케이블이 바로 그 비상유선케이블이었다. 분명 상상과 달랐고 힘들었다. 무슨일을 하는지는 알았지만, 굳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주 전투요원이 아니라 생각했고, 한낱 노가다 하는 병사라는 생각에 힘들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는 달랐다. 군대는, 특전사는 나때문에 탈선하지 않고 잘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2011년 그 당시 나는 무척 어린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다. KTX가 탈선 한 사건은 꽤나 사회적 이슈였다. 국내 최초의 고속열차 였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경쟁할만한 능력을 지닌 친구였기 때문이다. 매끈한 유선형 겉모습과 그 누구보다 빠른속도. 사람들은 아마 그 열차의 외관, 엔진을 보고 칭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은 그 화려한 겉모습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전체 크기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을 그 작은 너트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그 너트에서 시작됐다. 그날 오전, 아침도 채 먹지 못하고 나온 정비사들이 열차의 교차로를 확인했다. 여느때와 같이 문제 없던 정비가 끝나고, 마무리 작업을 할 차례였다. 조임쇠를 조여줄 너트가 없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찾지 않았다. 그깟 너트따위 대수롭지 않았다. 주린배를 움켜쥐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게 우선이였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따뜻한 국밥을 먹으면서 탈선한 KTX를 봤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위는,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부품들이 있기에 돌아간다. 엔진도 있고 바퀴도 있다. 반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너트도있다. 확실한건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될 부품이라는 것이다. 여기있는 나도. 어디엔가 있는 당신도. 각자의 위치에서, 너트가 되었든 엔진이 되었든 제 할 일을 하고 있기에 사회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우리가 엔진이라고 해도, 어딘가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을 너트를 흉볼 자격은 없다. 설사 우리가 보잘 것 없어보이는 나사못이라해도 기죽을 필요없다. 우리 모두는 사회의 소중한 부품들이다. 행여나 빠지기라도 한다면 탈선에 이를 수도 있는 소중한 부품들.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고마운 부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