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가득한 이들에게 눈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주겠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골칫거리 중 하나다.
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하나같다. 거추장스러워서. 눈이 내리고 난 새벽, 어김없는 제설작업과 늘어지는 교통체증, 추워지는 날씨 등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눈'이란 존재는 마냥 좋아하기엔 너무 많은 희생(?)이 동반된다. 그래서 난 눈이 싫다.
물론 나도 눈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눈사람과 눈싸움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했었고 그 유명한 가와 바라 야스나리의 <설국>과 (웃기지만 "국경의 긴 터널을 넘어서자, 그곳은 설국이었다(国境の長い トンネル を越えたら、そこは雪國だった)"라는 그 유명한 첫 문구를 읊조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등을 보며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눈이 주는 낭만, 그것만큼 영감을 주고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것 또한 없을 것이다. 그것에 취해 살았던 시절의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눈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이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는 일종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낭만을 기대할수록 현실은 냉혹할 뿐이란 사실을 언젠가 알고 나서부터 눈이 싫어졌다. 눈이 내리고 나서 그것을 정리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듯이, 인생에서 낭만을 그리기엔 고려해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기 마련이니까.
2021년의 첫 시작은 유독 눈이 펑펑 내린다. 그만 좀 내렸으면, 나의 낭만이 시작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