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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군 Jan 18. 2021

추억은 여전히 찬란하다

남과 여, 50년 만의 재회

  

늘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가는 새벽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늘 그렇듯 새벽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순간 '숨이 멎는' 영화를 발견한다.






남과 여 : 여전히 찬란한 (2019)



대표적인 누벨바그 시대의 클래식 멜로 영화로 유명한, 남과 여 (1966) (출처 : 영화 남과 여)



 고 2 때였나. 밤늦게 몰래 PMP에 다운로드하여 숨죽여 봤던 그 영화 '남과 여'. 이 영화를 지금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영화만큼 사랑에 대한 남녀의 심리 차이를 담아낸 영화가 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을 잊지 못하는 아눅과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장, 그리고 서로의 처지를 담담하게 그려낸 남과 여는 많은 호평을 받았고 20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남과 여 : 20년 후>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땐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장과 비서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게 된 아눅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나간 세월을 추억한다는 스토리 라인은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친숙한 나의 세대는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60년대와 80년대 세월을 담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비포 시리즈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남녀의 50년 뒤를 그린다. 아, 50년 뒤라.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그 당사자들끼리의 재회. 이 색다른 시도만으로도 얼마나 마음 설레는 일이던가.

 


살아생전에 이 투샷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사실, 나는 엄마 아빠의 과거 사랑이야기가 궁금했었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과거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 옛날의 사랑도 분명 순애보는 있었겠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왜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때도 사랑은 있었고, 아픔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너무 시시해서? 아니면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어쩌면 '궁금하지 않아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사랑과 나의 사랑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자만심과 우월의식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노년의 사랑은 청년과 중년의 사랑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저 서로의 이야기와 서로의 말,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며 추억하는 것.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장에게 아눅은 특별한 것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취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 26호 방을 기억하는지, 오롯이 장이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대화 주제를 꺼낸다. 그것이야말로 이미 사랑에 대해 겪을 만큼 겪어본 '어른'의 사랑이라는 걸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치매로 자신의 주치의에게 한 번만 하자고 꼬시는 (마음만은) 20대의 늙은 장 할아버지와 그의 곁에서 운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머리를 넘기는 아눅 할머니의 사랑은 이미 반세기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시작한 이 영화는 새벽 4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수많은 사랑 이야기보다도 이 영화가 주는 뭉클함과 아름다움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내가 행복감을 주는 사람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값어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P.S 1 1966년 30대의 나이였던 아누크 에메와 장 루이 트랭티냥은 2020년 기준으로 88세와 90세 노인이 되었다. 비록 머리가 벗어지고 주름살이 생겼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감성과 감정이 더해지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이 있었다. 특히 추억을 남기자며 바다 앞에서 셀피를 찍는 모습은 '멋지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던 순간이었다.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P.S 2 영화 말미에 모니카 벨루치가 잠깐 나온다. 순간 보고 '헉'소리가 나더라. 모니카 벨루치는 그 명성과는 다르게 좋은 작품의 단역과 조연, 주연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데 뜬금없긴 하지만 울림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P.S 3 프랑스는 참 좋은 게 옛날의 건축물이나 인테리어를 리모델링하기보다 다시 고치고 수리하며 옛것의 아름다움을 지킨다. 그들이 50년 전에 갔던 26호 호텔룸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에 나오는 파리의 모습들, 그 모든 것들을 간직한 프랑스란 나라의 매력은 어디까지 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가 아닐까 싶다.




P.S 4 이 영화에 나오는 장의 아들 앙투완과 아눅의 딸 프랑스와즈를 맡은 배우는 실제로 1966년에 같은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다. 세월이 주는 이 묵직한 감동은 이런 디테일에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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