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고 신입이다. 중고 신입이 취업하기가 더 어렵다더니 첫 회사를 들어갔을 때보다 뭐가 이리 고난과 역경이 많은지 모르겠다. 평소에 듣지도 않아도 되는 말을 들어야 하고, 주말에도 이력서를 보내라며 계속 독촉 문자를 보내던 사람이 정작 이력서를 보내고 나니 이력서를 가지고 이런저런 평가를 들을 때면 조금은 나이스 한 주말을 보내고 싶은 나로서는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난 비교적 어린 26살에 취직을 했고 29살 끝머리에 2번의 이직을 했다. 첫 직장의 월급은 120만 원. 그 때도 낮지만 현재도 엄청 낮은 그 월급을 시작으로 난 어떻게든 월 200의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회사를 다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자취생활에 이런저런 생활비가 들면 120만 원은 택도 없는 월급이었다. 그나마 올랐다고 오른 게 150만 원. 하지만 그 월급으로도 나는 살림살이가 그다지 남아나지 않았고 더 이상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비참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1년을 버텼다.
그 당시 때, 나는 '이게 맞는 걸 거야.'라는 약간의 체념과 주문을 하며 회사 생활을 했다. 제 아무리 갑상선에 1.3cm의 혹이 생겼어도, 카드 리볼빙이 눈처럼 불어나도, 친구들은 여러 여가생활을 부담 없이 즐길 때 나는 채 50만 원이 넘지 않는 카드값에 덜덜거리며 돈을 써야 했다.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도와주길 했나, 아니면 돈이 덜 들기를 했나. 나의 이십 대 중반은 직장을 다녀도 구질구질했고 멋지지 않았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월급을 올리기 위해 회사를 따지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가 나타났다.
헤드헌터들에게 따라오는 말은 이직한 회사가 많네요, 라는 피드백뿐이다. 어찌 됐든 회사를 많이 이직한, 뭘 많이 하긴 했지만 회사를 여기저기 움직인 직장인 1인 것이다. '조금 더 참지.'라는 말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지만 하지 않는다. 돈 200이 없어서, 저축할 돈이 없어서 새벽 3-4시까지 디자인 업무를 해야 했던 지난날의 나. 직장인이지만 돈이 없어서 치킨 하나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내 인생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취준생에게 나는 꼭 말한다. 첫 회사의 연봉만큼은 무조건 높게 가라고. 그리고 버티라고 말한다. 나는 26살 3년이 넘은 직장생활 동안 생활의 안정을 위해, 그 '돈'이라는 것의 기준이 처음부터 낮았기에 이와 같은 선택을 했고 이와 같은 결과가 났다. 제 아무리 전 직장의 연봉이 낮아서 이직을 많이 하든 말든 회사는 그저 이 회사를 잘 다니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 인생은 다시,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 모르겠지만 그것도 결국 견뎌 내면 답이 있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 것, 그리고 우울해하지 말 것. 늘 그 2가지 말을 되새이며 오늘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