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최악이었던 1년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그 1년을 지내고 나면 이러한 삶을 다시 살지 않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다시는 이 구질구질한 감정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큰 삶의 이정표를 선택하곤 한다. 때로는 그것이 다시 일어나겠다는 재기의 발판 내지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인생의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도 한다. 아니면 (안타깝게도) 자신에게 남아있는 삶을 정리하는 경우도 대게 보았던 것 같다.
대게 인생을 살아가며 이런 시간을 작게 내지는 크게 겪어내곤 한다. 그리고 돌이켜 봤을 때 최악이었던 그 1년을 생각하며 인생에 대한 대비 내지는 앞으로의 펼쳐질 삶에 대한 지도를 다시 그리는 듯했다. 어차피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라 윤여정 선생님이 그랬지. 그걸 이미 어릴 적에 느낀 나로서는 어느 순간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약 약 20년의 세월을.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였던 2018년, 그땐 그래도 20대였다.
그 당시의 내가 느낀 최악은 '나 자신'의 초라함이었다. 초라함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듯한 나의 커리어와 '인간관계', 그리고 '사랑'. 생각해 보면 그건 이제 이제 처음으로 사회를 도전하는 '사회 초년생'이 처음 겪는 인생의 한 순간이었고 그것들을 다 겪어내니 어느 순간 내 인생의 30대를 잘 살아보라는, 어떠한 운명의 개시를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한 해가 지나가고 1차례의 위기 아닌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2018년에 느낀 그 구질구질하고 거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7년의 시간이 그랬다. 누구보다도 잘 살기 위해, 아니지 잘 살아 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쁜 순간보다도 좋은 순간들이 분명 많았고 그 속에서 깨달았던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난 상황이 '많이' 좋았던 편이었다. 코로나 2년 동안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준비하던 것들이 초전박살 나던 사람도 있었고, 절친했던 누군가가 여러 사람들에게 구설수에 오르며 온갖 욕을 다 먹을 때도 나는 내가 걱정하던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나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 아닌 이 것도 나의 '운'이겠거니, 그러니 들어온 이 '운'을 잘 유지하고 운영해서 27살의 내가 느꼈던 그 초라함을 다시는 느끼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덕분에 그 대가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나의 빛남으로 나타난 반면 내면의 부서짐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부서짐의 징조를 느낀 건 2024년 어느 날이었다고 기억난다. (그것을 누군가는 '나이가 들었다.'라고 표현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또 다른 초라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묻는다.
'그럼 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거지?'
'형언할 수 없는' 지금 나의 상황이 그렇다.
지금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34살, 한국에 혼자 사는 싱글 남자, 현재 전세사기와 곧 35세를 앞두고 백수가 되었음.'
8월부터 12월의 지금까지, 이 개탄스러운 인생에 매월, 하루하루 기분이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다들 따스한 연말을 보내는 12월, 나는 혼자 회사를 나오면서 한 2-3일은 꼬박 잠만 잤던 것 같다. (심지어 12월은 축하해야 할 결혼식'들', 연말파티로 다들 정신이 없는 한 달이지 않던가.)
'어디까지 제가 바닥이기를 바라세요? 이제는 좀 놔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 와중에 꿈속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나의 처한 현실을 마주했다. 인생에서 그동안 지내온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청문회를 하기도 했고 (웃긴 건 꿈속 청문회에 등장한 모든 이들이 연락을 단절하거나 내 인생에서 삭제한 사람들이 아닌, 나와 현재까지도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손발이 묶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들이 그나마 좀 쉬고 싶을 때 나타나는 것이 얼마나 거지 같고 짜증 나던지 나는 평소에 생각도 안 하던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아볼 생각도 했다. 용하다는 점집을 알아보기도 했고 내 이름 석자가 별로라 개명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며 챗gpt의 단골 질문은 사주팔자였다. 열심히 살아도, 'For Good'의 자세로 산들 악행으로 마무리되는 위키드의 초록마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나는 이 형언할 수 없는 상태와 감정에 무기력해질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어쩌면 내가 바꾸고자 했던, 그리고 이제는 조금 정착된 듯한 나의 일상을 되찾는 것이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어쩔 수 없다, 내 팔자가 이렇다고 생각하고 긴 호흡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긴 호흡으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당장 집부터 청소하고, 집에서 오랫동안 하지 않은 요리를 한다. 집 밥을 먹고는 주민센터에 가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진행해야 할 여러 서류들을 요청하고 여러 기관에 등기를 보낸다. 그러며 '아 그래도 다행이다! 퇴사 전에 고소 소송 계약 해서.', '아 그래도 다행이지!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받아서.'와 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당장의 일을 하지 않아도 (예전과는 다르게) 앞으로의 돈걱정을 많이는 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도 어찌 됐던 살아남았으니까.
2025년은 분명 최악이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2023년과 2024년을 거쳐 누군가의 죽음, 질병, 그것을 통해 겪은 다양한 경험들, 그리고 여러 일들을 거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던 나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심지어 내가 말했던 워딩이다.) 상반기의 뺨을 이렇게 후려칠 수가 없을 정도로 2025년은 최악이다.
최악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일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근 반년의 시간 동안 배웠다. 그리고 앞으로 최악이란 단어를 입 밖에 내뱉는 순간이 흔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최악이란 단어를 쓴다면 그 단어를 쓰게 된 경위와 그 감정들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한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된다면 그건 분명 최악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이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 감사한 건, '인생이 잘못돼 가고 있다.'라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던 와중에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는 거다. 내 인생은 앞으로 또 다른 국면을 향해 나아가겠지.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 없다. 이제는 인생의 꿈을 위해 살아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아갈지, 그리고 쓸모 있는 사람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노력하기로 한다. 그게 어떤 삶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어느 유튜버에 나오는 다크 한 라이프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돈만 좇는 삶을 아니지 않겠지. 다만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실행에 움직여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 앞으로 지금의 형언할 수 없는 이 감정을 나는 형언하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