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줄 아는 용기

by 염군





■ Today's Fashion


- 추운 날씨엔 인스턴트펑크 리버시블 아우터

- 멋 낸다고 입은 스페로네 라이더 자켓

- 오늘의 가방은 모노클 X 미스터포터 토트백

- 신발은 프로스펙스 어글리 슈즈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퇴사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출근을 한다. 심지어 출근 시간도 동일해서 장소만 다르지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같은 역에서 환승을 한다.


출근길은 변함이 없는데 퇴사를 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졌다. 월요일만 되면 한숨부터 쉬면서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날 괴롭힐까.' 란 생각부터 들었는데 요즘은 '어차피 일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시작이야.' 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다. 나의 월요일이 달라졌다.



머리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그동안 정지되어 있던 나의 또 다른 뇌가 다시 가동하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집 가서 책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해야지.'와 같은 비교적 생산적인 고민들도 해본다. 당장 내일 닥치는 또 다른 일들을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마다 깨는 나는 이제 없다. 알람 소리에 맞춰 기가 막히게 일어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 준비를 하고, 더 잘해보자고 스스로를 응원하는 나 자신만 있을 뿐.





회사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면 좋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 스위치를 끄리라 다짐한 사람들도 시시각각 나오는 이슈들에 다시 스위치를 켜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다니는 이 회사가 상당히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회사의 복지나 보호는 받으면서 정시 퇴근에 , 그날의 주어진 일만 성실하게 수행하는 삶이 개인의 삶을 가꾸는데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으니까.

단지 계약직이라는 프레임과 그에 상응하는 월급이 걸리긴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내가 어떠한 직함을 달고, 그에 상응하는 월급을 받았을 때 지금만큼의 행복감과 여유를 느꼈던가. 그 감정은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라는 걸 지금은 알지 않던가.




여섯 시 반, 정시 퇴근.


미래를 준비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늘 말하지만 나 자신과 현실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한다면 미래를 준비한다 한들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월요일의 내가 변했지만 일주일의 나, 한 달의 나, 그리고 먼 미래의 내가 변할 수 있으려면 인생의 긴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그 조절의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해법을 '포기'라는 단어에서 찾은 것 같다.


회사생활 동안 내 인생에, 내 커리어에 '포기'란 단어는 없었다. 어설플 순 있어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일단 해보는 게 나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일들을 떠안고 혼자 스트레스받으면서 어렴풋이 한 사실을 깨달았다. 일에 대한 포기, 열정에 대한 포기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못 한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포기하겠습니다.' 내지는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때로는 내 인생을 지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일단 나를 믿고 행동해보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그 결과를 책임져줄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말인즉슨,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고 해서 나에게 포상이 오거나 내 인생이 달라질 확률은 현저히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히려 타인이 떠미는 수많은 일에 허우적거리며 그 일들을 처리하고 그 공을 타인이 차지하는 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그게 그간 3년 동안 내가 겪고 내가 봐온 모습들이었다.

그러기에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 해서 나를 책망할 필요도 타인의 책망에 상처 받을 필요도 없다. 타인은 그저 당신을 이용해먹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그리 할 뿐, 내가 어떤 고통이 있는지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100% 공감하지 못한다.

아직 나는 포기에 대한 용기가 많이 부족하다. 못 한다는 것,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할 줄 아는 것. 그것은 창피한 게 아니라 회사생활의 또 다른 방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음 회사에서는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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