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를 잃지 않기를.

by 염군




한 때 열정 가득했던 내가 있었다.

그냥, 뭐든지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었던 나. 무조건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했고 서툰 것에 겁먹지 않았던 나. 사람의 욕과 미움받을 용기에도 올곧게 나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나.

29살 마지막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난 이런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제법 일거리가 된다. 어제부터 새로운 공정에 들어가서 그런가 단순 업무가 단순 업무가 아닌 느낌마저 든다. 조금조금씩 피곤함이 몰려오는 건 사실이다. 왜 이럴까, 의문도 드는 요즈음.


어느덧 하루의 한편씩 보기로 한 영화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간다. 매일매일 도장 깨듯 보는 미국과 일본 드라마, 페르도 알모도바르의 영화들. 옷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져 가는 와중에 유튜브는 또 찍었다.



그래도 뭘 하긴 한다 계속.



이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갈 때쯤, 회사 동기 친한 M형의 퇴사 소식을 전해 듣는다. 드디어 하나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구나. 이제 반백수가 된 지 2달 즈음이 되어 가는데 내가 감을 잃진 않을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이 드는 요즘이다.


늘 말했지만 일을 쉬어본 적이 없지만 이렇게 관련 직무를 안 하면서 쉬어 본 적은 또 처음인지라 무섭기까지 하다. 이제는 조용 조용히 지내면서 무난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내가 되어야 할 텐데. 과연 나의 미래는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12월의 2주 차는 이렇게 끝이 난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그저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의 내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직장을 다니면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곧 타인이 정의하는 행복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삶을 생각보다 많이 따져가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어불성설이고 나 자신의 정체성과는 정말 반하는 행동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의 삶을 사느니 차라리 쇼윈도의 마네킹으로 사는 게 낫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이른바 '꼰대'와 '어르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것이 현실적인 조언이라 말하는 기회주의자들을 멀리하기로 다짐한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잃기를 바라는 것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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