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좋은 영화를 보았던 하루
오늘 본 영화
-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뭘 잘못했길래' & '라이브 플래시'
-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선샤인 클리닝'
라이브 플래시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이 영화가 후기에 속하는 영화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싶다. 뭐 말이 좋아 예술 영화지 막장 드라마를 스페인식으로 알맞게 버무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그의 영화는 색채, 미장센, 그리고 스토리라인이 참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영화 중 하나다. (특히 키카.) 이 영화는 한 편의 스페인 막장 드라마에 그만의 감성을 불어넣은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4년 전 한 공간에 있던 남녀가 4년 후에 겪게 되는 인생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을까. 빅토르는 비록 자신의 이름처럼 '성공'을 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린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자칫 격하면서도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선샤인 클리닝
사실 여성 주연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선택했으나 보는 내내 느껴지는 그녀의 고단함이 매력으로 다가온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게 빠져든 영화였다.
사실 근래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살았건만 29세 말에 남은 거라곤 옷들과 명품뿐인 내 모습을 보며 약간의 자괴감이 왔다. 단순히 운이 안 좋았다고 하기엔, 가진 것이 없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버거운 환경에서도 '난 특별해. 난 능력 있어.'를 외치는 로즈를 보며 그러한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부분임을 시사한다.
한 때 고등학교 치어리더 리더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미혼모에, 집까지 태워버리는 동생, 변변한 사업 실패로 짐짝이 되어버린 아버지, 사고로 학교에서 쫓겨난 오스카까지. 이렇게 운이라곤 없는 것만 같은 로즈.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며 죽은 사람들의 자리를 치우며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기보단 멋져 보였고 한편으로는 위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는 눈물보다는 웃음으로 이 모든 것들을 헤쳐나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명장면은 자살한 엄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자매가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엄마의 흔적'이다. 사는 동안 '피칸파이가 제일 맛있어요.'라는 대사를 남겼다던 그 영화를 곱씹었다던 엄마의 모습을 보는 그녀들의 모습은 그 짧은 순간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인생을 길게 산 건 아니지만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그런 찰나의 순간들이 어쩔 땐 기적처럼 다가올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넣으면서 인생은 역시 그래도 살 만한 희망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의 프로듀서가 만들었다던 이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그 영화의 냄새가 스며든 것 같다. 나름의 대가족이 출연하고, 아이가 나오고, 여성 중심의 서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질구질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래서 풀리지 않는 인생도 '인생'임을, 그리고 남이 아닌 '내'가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박수를 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