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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Aug 07. 2021

나의 늙은 개 이야기

늙고 병들어도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너는


 너와 함께한 지 벌써 만 13년이 되어간다. 처음 네가 우리 집에 왔던 날, 우리 다섯 식구는 밤마다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작고 어린 네가 혹여나 사람 발에 치여 다칠까 염려해서였다. 자고 있는 내 배 위를 밟고 다녀도 느낌조차 잘 나지 않던 너. 솜사탕처럼 가볍고 여렸던 네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준 덕분에 우리 식구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참 부족한 게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너는 참 대단한 믿음과 사랑을 주었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널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네게 더 좋은 가족이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뽀얗고 부드럽던 네 털이 이제는 군데군데 색이 바래고 윤기를 잃었다. 까맣던 코는 연회색이 되었고 두 눈동자는 빛을 담으면 하얗게 변한다. 까랑까랑하던 소형견 특유의 짖음 소리는 이젠 맑기보다 탁해졌고, 성대에는 힘이 좀처럼 잘 들어가지 않는지 헛짖음도 많아졌다. 산책을 나가면 지칠 줄 모르고 달리던 어린 강아지는 이제 늙은 개가 되어 조금 뛰다 보면 품에 안아야 한다. 그래도 다 괜찮다. 저 멀리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귀신같이 알아보고 뛰어와 짖던 네가 언제부터였는지 그러지 못하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슬펐지만. 지금은 현관을 지나 방에 들어와도 세상모르고 자는 네 모습에 어느덧 온 가족이 익숙해졌다.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네 모습을 보며 어느덧 나는 조금씩 너의 빈자리를 준비한다. 몇 년 전 나는 이미 반려동물의 장례 절차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작은 가족을 떠나보낸 몇몇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가까운 시설들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다이어리에 정리해 놓기도 했다. 아직은 그것이 쓸모 있을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네가 만약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때 가서 정신없이 우왕좌왕 너를 보내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튜브에서 노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영상을 종종 본다. 많은 노견들이 아프고 병들었다. 그중 그들의 마지막 인사를 담은 영상을 보면 눈물을 멈추기 힘들다. 아마 마냥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도 저들처럼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때 너와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직은 상상하기도 싫다. 상황을 떠올리기 이전에 눈물부터 앞설 뿐이다. 그럴 때면 빠르게 영상을 멈추고 전혀 다른 내용의 웃긴 영상을 찾아본다. 눈물이 맺힌 눈가를 슥 닦는다. 이기적이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너를 처음 데려오기 전에 내가 이것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개도 늙고 병든다는 사실을. 너로 인해 웃고 행복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동안을 널 그리워하며 가슴 아프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래도 나는 너를 데려왔을까?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너는  옆에서 자고 있다. 날이 더워 헥헥거리면서도 너는 어떻게든 나와 붙어있으려고 애쓴다. 밤에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면 너는  등에 자신의 등을 나란히 놓고 자리 잡는다. 너는 눈을 떠서 감기 직전까지 항상 나만 쳐다보고 있다. 밥을 먹고 TV 보다가도 너는 내가 돌아보면 바로  닿는 자리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윤기는 잃었지만 너는 보슬보슬하니 만지면 감촉이 좋다. 털에 코를 박고 킁킁대면  냄새가 난다. 매일 놀자고 나를 귀찮게 해도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죽고 싶을만큼 아픈 새벽이면 옆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에 얼마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살면서 내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던 . 이런 나라도 이유 없이  사랑해주는 . 나는 네가 정말 좋다. 아직은   없인 안되니까 우리 조금만  같이 살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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