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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Feb 28. 2021

낭만이 죽은 도시

월요병에 걸린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애를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나는 결혼과 연애가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점점 내가 다른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요령만 늘어가는 것 같다. 어느샌가부터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재고 따진다. 그러는 새에 기회를 놓칠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그 기회가 두 번 다시는 안 올 절호의 기회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다 어설프게 시간만 허비하고 빈 손으로 돌아오게 될 때가 있다. 물론 그땐 모르고 시간이 지나고야 깨닫는 사실이다. '아, 그때 내가 그걸 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뻔한 결과를 예상하고 발 담그지 않았던 일에 한 번쯤은 배 아프게 될 날이 온다.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려 장전해 두었던 목구멍과 손가락이 무안해지는 순간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지기가 힘들다. 모두 그러고 싶어 그런다기보다는 사실 그럴 기회며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겠지. 핑계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엔 다들 너무나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우리는 대학을 가고 취업하고 일하면서 점점 제 빛을 잃고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가 된 거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점점 말 수가 줄어가고 그마저도 다들 퇴근하고 나면 거의 오가는 이야기가 없다. 최근에는 출근하고 나서도 일에 치이느라 서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친구들과 한번 날 잡아서 만나기도 어렵다. 겨우 틈이 난 어떤 날엔 딱히 일정이 없어도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약속을 거절했다.


 주말엔 집안일을 다 미뤄놓고 하루 종일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다. 어렸을 땐 잘 먹고 잘 자고, 잘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어쩔 땐 누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도 버거운 기분이다. 집에 있는데 계속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실을 살기 위해 꿈도, 친구도, 사랑도 하나씩 떠나보내다 결국엔 나까지 잃었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도 나를 사랑하는 법도 잊어버린 채 기계처럼 호흡하고 유령처럼 떠다닌다. 점점 내 안의 순수한 낭만도 죽어가는 느낌이 든다. 감각조차 무뎌진다. 잠을 자도 악몽만 꾼다. 이젠 내가 뭐가 좋고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올려다본 하늘이 언제였던가. ‘슈퍼문’이니 뭐니 하며 툭하면 떠들썩해지는 언론과 SNS를 보며 별이며 달을 남이 찍은 사진으로만 감상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이제는 그런 기사를 봐도 시큰둥해하며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 하기 시작한 건. 여름에 놀러 간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 속 바닷소리를 잊은지는 얼마나 되었던가. 따가운 햇볕과 거친 바닷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파도에 잘 길들여진 돌 하나에 감탄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풀숲에서 발견한 무당벌레를 보고 보석알같이 아름답다 생각했던 나는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리 좋아했던 흰 눈이 내려도 차 막힐 출근길 걱정만 하게 되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언제까지 해야 할까. 다 늦은 밤 매연을 내뿜는 버스의 열기를 뒤로 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불 꺼진 집안에 들어서 뒤꿈치가 다 까진 채 꾸역꾸역 신었던 구두를 벗어던지는 일을. 헛헛한 게 바닥인지 마음인지 알지 못한 채 온기 없는 집안에 보일러를 켜고 가만히 데워지길 기다리는 일을. 하루 종일 일 했지만 괜한 아쉬움에 새벽 동이 틀 때까지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다 겨우 잠드는 일을. 그리고 변함없이 흐르는 이 공허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용하고 평안히 망가져가는 나를.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이 지겹다. 모두가 자신만이 진짜라 외쳐대니 차라리 귀가 멀기를 택한다.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른 노릇이란 건 너무 버겁다. 당장에 다 던져놓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이 계속해서 나를 무너뜨리려 약해진 마음을 두들긴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도망갈 곳 조차 없다.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 낭만이 필요하다. 사랑과 희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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