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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Nov 25. 2020

졸업을 앞두고

어느 예대생의 이야기

 시작은 분명 모두가 함께였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일인데 다들 날카로운 현실 끝에 잔뜩 베여 평생 앓을 상처만 가슴에 안고 떠나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나는 당장 나 자신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미처 뱉지 못한 말들은 그저 그런 미지근한 후회로 남았다.


귀하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나는 운이 좋은 아이다. 좋아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축복받은 일이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유아기부터 유독 손으로 하는 일에 재능을 보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찰흙 놀이를 곧 잘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어차피 예술가가 될 운명이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우리 집안에 예술가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삶이었다. 조금, 아니 많이 불행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는 특성화고 디자인과에 가고 싶었다.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반에서 항상 10등 정도를 했던 나는 거뜬히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특성화고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라는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큰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땐 난리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원서를 안 써주신다고 하셨다. 디자인은 대학에나 가서 하면 되는데 그걸 왜 벌써부터 하냐고 하셨다. 지금 네 성적이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조금만 열심히 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부모님은 그걸 왜 네 마음대로 정하냐고 역정을 냈다. 상의도 없이 네 미래를 결정하면 어떡하냐며 너는 부모를 부모 취급하지 않는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며칠간 그 문제로 씨름하자 아빠는 화를 내며 그럴 거면 차라리 서울의 유명한 상업 고등학교에 가라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러기 싫었다. 때문에 한동안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나는 죄인이었다.


 결국 뒤늦게 특성화고 디자인과에 진학했다. 면접과 입학시험을 거치고 여러 동네에서 모인 친구들은 모두 개성이 강했다. 디자인과였지만 다들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 생활은 힘든 일도 많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유쾌한 일도 많았다. 예술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요즘 한편으로는 마음이 침울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생각이 난다. 매일같이 만나 이른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웃고 떠드는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라 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때. 저마다의 꿈을 품고 한 곳으로 모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다시 뿔뿔이 흩어져야 되었던 그때가 돌아왔다.


 졸업이 모두가 각자의 꿈을 위해 또다시 흩어지는 여정이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친구들이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충분히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간다. 어른들은 꿈은 취미로 하는 거라고 했다. 꿈은 돈이 되지 않으니 결국 팔아 현실과 타협한다. 대학 입시가 끝날 때 즈음이 되면 다들 성적에 맞춰 학과를 지원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헤맸다. 졸업할 때가 되면 일단 요구받는 조건에 나를 끼워 맞췄다. 그리고 자신을 써 주는 곳으로 가 일했다. 그러고 나면 취미로라도 무언가를 할 시간은 없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영혼들이 뜨거운 태양빛을 이기지 못하고 다 타버린다. 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빛들이 하나둘씩 모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새벽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옆에서 함께 재잘대던 목소리도 이젠 없다. 다시 밤이 찾아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홀로 남은 어둠 속에서 외로워 울었다. 세상은 빛나는 아이들을 잃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이 또다시 반복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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