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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 Nov 25. 2020

글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남의 생각을 내 생각처럼 여기는 일은 이제 그만

 글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공모전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이트가 하나 있었다. 그 사이트는 회원가입 후 공모전 게시판에 해당 기간 꾸준히 글을 올리면 자연히 공모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회원 수가 엄청 많거나 글이 활발히 올라오는 곳은 아니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낡은 사이트였다. 대단한 작가들이 대거 있는 곳도 아니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간간히 글을 올리는 곳 같았다. 하지만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소소한 글을 올린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아둔 내 짧은 글을 올렸다.


 대단한 성과를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혼자 가슴에 품고 있던 글들을 어딘가에 보여 아주 적은 사람들이라도 내 글을 봐준다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그때 재수, 그것도 반수 중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그래도 가끔 숨을 돌리고 싶을 때면 독서실 의자에 앉아서 책상 위에 달린 백열등 빛만을 의지해 휴대폰 메모장에 조각글을 적었다. 그리고 가끔 꺼내보며 다시 생각을 다듬고 살을 덧붙여서 그 사이트에 글을 업로드했다.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글마다 댓글을 다는 사람이 생겼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이미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사이트에서 우수회원인 사람들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글에도 거의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글 목록을 보았을 때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의 내 글에만 댓글을 달았다. 내 글이 좋다고 그랬다. 나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그 댓글을 읽으면서 조금 설렜던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글을 업로드하러 그 사이트에 로그인했다. 게시판에 들어가 별생각 없이 글 목록을 보며 마우스 스크롤을 쭉 내렸는데 익숙한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내 글이 좋다고 댓글을 달았던 사람이었다. 나도 그 사람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글 목록에 들어가 쭉 보는데 내 글을 짜깁기해 자기 글처럼 올려놓았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몰라. 그래. 이런 소재는 원래 흔하잖아. 그래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내 글감을 몰래몰래 조금씩 떼어다 썼다. 좋다고나 하지 말 것이지. 크게 실망하고 낙심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결과는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나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내 글은 어디의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그저 그런 사이트에 올라온 사소한 글일 뿐이다. 남들 눈에 그 사실이 뭐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심한 일이었다. 문제를 제기해봤자 아니라고 하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아마추어의 글들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괜히 스트레스받아하며 전전긍긍해할 바에 하던 공부에나 집중해야겠다. 나는 그냥 몇 개 없던 내 글을 지우고 그 사이트에서 탈퇴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런 마음이었다. 다시는, 내 글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보여주지 않을 거야. 나 혼자만 간직할 거야.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다시 글을 써서 올리려 하고 있다. 작년에 우연히 글로 상을 받게 되었던 경험이 좋은 발화제가 되었다. 이곳이 나의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란다. 전처럼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글을 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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